100억대 초대형 도술이 펼쳐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했다. 나는 놈이 있으면 기는 놈도 있다 했다. <전우치>는 뛰고 날고 기고 그렇게 다 한다. 지난 <박쥐> VIP 시사회에 참석해 뒤풀이를 하던 <전우치>의 김윤석은 “와이어 연기가 힘들었다”는 송강호의 얘기를 듣고 헛웃음을 켰다. <전우치>는 와이어 연기가 기본이라 힘들다, 아프다 구시렁댈 처지가 못 됐기 때문이다. 와이어와 한몸이 되는 건 당연한 일. <홍길동전>과 함께 대표적인 고전 영웅소설로 꼽히는 <전우치전>에서 캐릭터 모티브를 따와 현대를 배경으로 재창조한 <전우치>는 누명을 쓰고 그림족자에 갇힌 조선시대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500년 뒤인 현대에 봉인에서 풀려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에 맞서 싸우는 활약상을 그린다.
전우치는 도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사실 풍류와 여자에도 제법 관심 많은 젊은 도사다. 봉인에서 풀려나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요괴 잡는 임무를 맡지만, 타고난 장난기와 승부욕 그리고 500년간의 시차 때문에 늘 소동을 몰고 다니는 일촉즉발의 악동이다. 그가 사모하는 여인이 바로 서인경(임수정)이다. 한편, 도학이 깊은 도사 화담(김윤석)은 조선시대에 신선들을 도와 전우치를 봉인했던 인물로, 현대에선 요괴를 부리는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의 주인 자리를 두고 전우치와 또다시 대결하게 된다. 이때 전우치를 돕는 인물이 초랭이(유해진)인데 사실 전우치가 도술을 써서 사람으로 둔갑시킨 개다.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 혹은 ‘최동훈의 <놈놈놈>’이란 표현처럼 <전우치>는 여러모로 화려하다. 일단 장장 8개월 동안 서울·부산·대구·철원·전주·익산 등을 누비고 필리핀 보라카이 해외 촬영까지 대규모 로케이션을 소화한 <전우치>는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다. 도심 빌딩 숲에서의 와이어 액션은 물론 강남대로와 청계천, 명동 등 번화가에서 ‘도술’을 쓰며 다녔다. 거기에 <범죄의 재구성>(2004)과 <타짜>(2006)에 이르는 최동훈 영화의 팬이라면 무척 반가울 얼굴들이 총출동한다. <전우치>의 스승 백윤식은 <타짜>의 평경장이 떠오르고, 유해진의 ‘개 같은 인간’ 연기는 벌써 눈앞에 어른거리며, <타짜>의 ‘아귀’ 김윤석은 선비와 악마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최동훈 사단’에 새로이 합류한 강동원도 만만찮다. 얼핏 <형사 Duelist>에서의 긴 머리와 서늘한 제스처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정두홍 무술감독이 “올림픽에 와이어 종목이 있다면 단연 금메달감”이라 치켜세운 그는 이전 모든 캐릭터와 다 비교해도 가장 명랑만화에 가까운 천방지축 도사다.
하지만 역시 지금껏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크다. 강탈과 도박 등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범죄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그가 토속적 판타지로서 ‘도술’에 도전한 것. 뭐 따지고 보면 속임수로서의 범죄나 도술은 매한가지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 촬영하기 전부터 장기인 범죄영화적인 요소와 창의적인 CG 모두를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는 500년의 시간차를 어색하지 않게 그려내는 것일 텐데, <범죄의 재구성>에서 한국은행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타짜>에서는 허영만이라는 이름 앞에서도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여왔던 그다. 스포츠처럼 말하자면 그는 늘 공격축구, 공격야구를 구사했던 감독이다. 이제 그가 어떤 패를 꺼낼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UP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이라 불러달라는 얘기처럼 <전우치>는 단순히 규모에만 신경 쓰지 않는다. <괴물>의 괴물, <해운대>의 파도와 비교하자면 ‘도술’은 좀더 업그레이드된 한국영화의 도전이기도 하다.
DOWN 현재 한국영화계에 데뷔작부터 3, 4편에 이르기까지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감독은 오직 김용화뿐이다. 봉준호도 데뷔작을 제외하고 ‘<살인의 추억>부터’라고 해야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전우치>는 최동훈 감독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