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가 스크루지라니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뭘까? 아마도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닐까. 피도 눈물도 없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3명의 유령을 만나 삶의 참된 의미를 배운다는 이야기. 그냥 동화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다. 여기에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의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요소, 각종 유령이 등장하는 호러소설적 요소, 그리고 구원과 새로운 삶이라는 신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 이 모든 게 골고루 갖춰져 있다.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보유한 이야기라고 할까.
로버트 저메키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야말로 오랜 꿈의 프로젝트였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을 전작 <폴라 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처럼 테크놀로지의 또 다른 신기원으로 등치시키려는 시선을 경계하고 있다.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그래픽 노블 버전을 만드는 중이다. 카툰 버전이나 머펫 인형 버전이 아니다.” 그에게 기술은 스토리를 뒷받침해주는 깔끔한 도구에 불과할 뿐, 그가 천착하는 건 찰스 디킨스의 신비롭고 보편적인 이야기의 정확한 전달이다.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짐 캐리다. 그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1인4역을 연기한다. 비열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과 더불어, 과거과 현재, 미래의 유령 모두를, 물론 3D 테크닉과 퍼포먼스 캡처 테크닉의 힘을 빌려 말이다. 대신 짐 캐리의 익숙한 ‘웃기는 얼굴’의 향연을 기대해선 안된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정말로 원작 그대로 충실하게 찍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짐 캐리는 이 부분을 특히 진지하게 강조했다. “난 아일랜드 악센트를 정말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었다. 그쪽 사람들이 보고 감쪽같이 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는 자신의 지난 삶 중 ‘<크리스마스 캐럴>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며, 원작과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했다. “자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내게도 미래의 유령이 찾아온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최악의 순간을 살고 있었는데, 더이상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런 기회를 가졌던 건 행운이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이건 정말 아름답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UP 로버트 저메키스는 훌륭한 테크니션일 뿐 아니라 뛰어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거기에 영국의 국민작가 찰스 디킨스의 영원한 걸작이 더해졌으니, 영화적인 재미는 걱정 안 해도 될 듯.
DOWN 개과천선하지 않는 나쁜 놈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 착한 이야기가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