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반기 기대작] 11. 파주
2009-09-22
글 : 이화정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다

갑작스런 언니의 미스터리한 죽음. 남은 건 그녀와 살을 맞대고 살았던 언니의 남편뿐이다. <파주>는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고통이다. 아니,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실체가 알고 보니 사랑이었다는 제법 독한 맛의 멜로드라마다. 스스로 차마 인정하기 힘든, 누구에게도 인정받기 힘든 금기의 사랑. 안개 자욱한 파주의 풍광과 함께 펼쳐지는 <파주>는 바로 이 헤어나올 수 없는 희뿌연 사랑을 기술한다.

운동권 대학생 중식. 짝사랑이라는 ‘과거’를 품고 도피하듯 온 파주에서 한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불만족스럽던 결혼의 끝은 갑작스런 아내의 사고사였다. 아내에겐 돌아가신 부모를 대신해 돌보던 어린 여동생 은모가 있다.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의 인연으로 맺어진 형부는 죽은 언니를 대신해 그녀의 보호자를 자청한다. 사고 뒤 장장 7년, 이상하게 얽힌 두 남녀의 줄다리기는 모양도 실체도 없다. 사랑보다 미움이, 미움보다 의구심이 앞서는 미스터리한 사랑. 과거와 더 먼 과거, 현재를 오가는 둘의 감정은 끊어질 듯 팽팽하다.

<파주>는 2002년 <질투는 나의 힘>을 연출한 뒤 별다른 후속작 없이 꽁꽁 숨어지냈던 박찬옥 감독의 절치부심 연출작이다. 막상 촬영을 시작한 건 올해지만,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집필하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을 거치는 동안 법적, 제도적 금기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식과 은모의 갑갑한 사랑도 두터워졌다. “둘을 이어주던 끈인 언니의 죽음 이후, 둘에게는 아무도 없다. 똑같은 외로움을 겪는 이들이기에 통할 수 있는 감정, <파주>는 그 비밀스런 속내에 관한 이야기다.” 박찬옥 감독은 <길>(1954, 페데리코 펠리니)의 젤소미나와 베니같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남녀를 말한다. 그들의 감정을 침범하는 데는 일방적인 잣대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선균이 형부 중식으로, 서우가 처제 은모로 가늠하기 힘든 사랑의 소모전에 투입됐다.

UP 물 샐 틈 없이 들어찬 두 남녀의 감정 줄다리기란 점에서 박찬옥 감독 특유의 정서를 놓치지 않은 채 전작보다 선명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기술. 좀더 관객 친화적인 영화가 기대된다.

DOWN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느 쪽도 적극적이지 않은, 관망하는 듯한 감정은 보는 이에게 소모전이 될 수도. 역시 긴장의 정도를 유연하게 조절해야 하는 숙제가 감독에게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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