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모든 것은 동그라미에서 시작됐다
2009-10-14
글 : 장미
사진 : 최성열
인디애니페스트 인디의 별 수상작 <띠띠리부 만딩씨>의 홍학순 감독

올해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대상 격인 ‘인디의 별’을 수상한 <띠띠리부 만딩씨>를 감상한 누군가는 필시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맙소사, 이건 지구인의 상상력이 아니야…. 한마디로, 홍학순 감독의 <띠띠리부 만딩씨>는 순도 100%의 독창성으로 반짝이는 보기 드문 창작물이다. 7분가량의 단편이지만 감독의 감수성을 꿰뚫기엔 충분하다. 물론, 함께 상영된 <계속 달리는 잉카씨>까지 곁들인다면 그의 작품세계를 좀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천진한 그림체, 나비처럼 날아다니다가 어느 결에 그림으로 녹아드는 말풍선, 예측불허로 뛰노는 캐릭터들, 순수하게 즐거운 애니메이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한 홍학순 감독은, 알고 보니 ‘우유각 소녀’ 드로잉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혼란스럽지만 실은 교묘하게 코드화된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작업 사이의 공통점이 분명히 눈에 띄었다.

-각본, 연출, 애니메이션 등을 혼자 도맡았는데, 기본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말하자면 길다. 내가 1998년 겨울에 동그라미를 엄청 많이 그렸다. 그리고 그리다가 그게 토끼가 된 거다. <계속 달리는 잉카씨>에도 나온다. 마지막에 잉카씨가 집에 도착해서 만나는 캐릭터들 있잖나. 걔네들이 1998년 겨울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해서 1999년쯤 다 나왔고, 2001년엔 그 세계가 90%가량 완성됐다. 그걸 나만의 기록방식을 개발해서 기록했다. 천페이지 정도 된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인가.
=이때다. 이걸 그리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가.
=그렇다. 여러 권의 드로잉북이 있었고, 그걸 추려서 확장팩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여기 전봇대가 있고, 저기 나무가 있다. 전봇대와 나무의 뿌리가 자라다가 딱 닿은 거다. 전기신호랑 생명신호가 만난 거지. 그럼 동그라미가 네모, 세모로 막 변하는 거다.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더하기 빼기를 한다. 그렇게 캐릭터들이 생겼다. 처음엔 어린애들이 혼잣말하면서 낙서하는 것처럼 드로잉을 했다. 그러다가 이걸 언어로 패러디해서 구조를 가져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줄 단위로 정리했다. 나중엔 이 시간개념을 담으려면 영상이어야 한다 싶었다. 그게 뭐냐. 애니메이션이었다.

-만딩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다. 잉카는 나중에 닭으로 밝혀지지 않나. 초기 캐릭터 중 하나인.
=만딩이는 얘네들이 다 나온 다음에 탄생한 일종의 서브 캐릭터다. 아카데미에서 졸업작품을 만들라는데, 메인 캐릭터를 넣을 만한 그릇이 아니더라고. 2개월밖에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런 작업 방식이라면 왜라는 질문이 의미없을 수도 있을 텐데.
=아니,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 물어보더라. (웃음) 명랑애니메이션이라서.

-그럼 만딩은 왜 아프리카 태생 흑인인가.
=2003년부터 펭귄의 집인 이글루 천장으로 야자나무가 뚫고 나온 이미지를 계속 그렸다. 그 세계에서 만딩이는 인류 대표다. 흑인이라기보다 더운 나라의 누군가가 정반대 환경인 남극에 가는 거다.

-짐은 누구인가. <띠띠리부 만딩씨>와 <계속 달리는 잉카씨>의 음악을 담당했던데.
=한국계 프랑스 사람이다. 아카데미의 교수님이 소개해줬다. 음악을 워낙 잘 만든다.

-<띠띠리부 만딩씨>의 노래, 목소리 연기까지 맡긴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분이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처럼 들리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어떤 음악을 부탁했나.
=만딩타임과 펭귄타임이 있는데, 그것만 구분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한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 애니메이션 안에서 놀아야 한다. 두 번째 대상을 파악하는 객관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 그분은 굉장히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었지만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았다. 내가 운이 좋았지.

-노래 가사도 직접 썼다고.
=전세계의 단어를 다 짬뽕시킨 거다. 메르시 보꾸 볶음밥 나리다 나리다, 이런 식으로. 만딩이가 전세계를 다니니까 언어 하나를 특별히 잘하진 못해도 여러 나라 단어를 어느 정도 알 것 아닌가. 혼자 막 읊는 거다.

-만딩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내가 남미 음악을 좋아한다. 살사를 5년 정도 췄는데, 살사 음악에 후렴구식으로 띠띠리부 만딩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아프리카 음악에도 그 단어가 나오는데, 전세계 음악이 섞여서 그렇다더라.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지금 다음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스토리는 없다. 그냥 생활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다. 기존 캐릭터들, 말, 떠기, 즐거운 여자, 개, 닭, 토끼 등이 나올 거고, 만딩이랑 잉카씨가 인사했던 동물들도 나올 거다.

-캐릭터들의 놀이 같은 건가.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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