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매우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 <청계천 메들리>
2010-10-12

<청계천 메들리> Cheonggyecheon Medley
박경근/ 한국/ 2010년/ 79분/ 와이드 앵글

<청계천 메들리>는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며 동시에 다큐멘터리라는 예술작업에 관한 자기 고백의 영화이다. 여기서의 죽음은, 물론 사람이나 생명체의 죽음은 아니지만,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청계천이라는 공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한 시대가 끝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죽음에는 개발지상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고, 소박하지만 굳건하게 쇠를 만지는 거친 직업들을 묵묵히 이어온 사람들의 안식도 있다.

청계천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의 공장이 문을 닫게 되고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곳을 떠나게 된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공장을 중심으로 청계천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작업을 통해 지나온 역사의 흔적들에 현미경 같은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의 모습은 모아져서 역사의 흐름을 형성했던 조각, 조각의 의미로서 가치를 지닌다. 작은 부품에서 우아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악기까지, 때로는 실험적인 예술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쇳덩어리를 만지는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결코 드러내어 자랑하지도, 이름표를 붙이지도 않는다.

<청계천 메들리>는 매우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이다. 심지어 개인의 관점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심리적 흐름을 따라 영화가 진행된다. 우리는 그저 “나”로 표현되는 그의 악몽과 할아버지에게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글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과 느낌들을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고민과 회의, 의심을 영화 속에 풀어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쇠를 깎아 만드는 작업의 단순함과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같이 주어진 소재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의 고된, 그러나 따뜻한 삶이 살아 숨 쉬던 상징적 공간 청계천의 종말을 고하는 죽음에 관한 영화다. 쇳소리를 바탕에 둔 미니멀리즘의 사운드는 제례음악처럼 개인들의 역사가 가지는 고통의 무게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청계천의 죽음과 재탄생에 관한 영화이며 동시에 다큐멘터리 만들기와 작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충직/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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