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페스티발] 숨소리마저 복종할래요
2010-11-09
SM 슬레이브, 기봉역의 성동일

보일러 잘 보기로 동네 소문난 철물점 주인, 기봉. 서글서글한 인상에 통상적으로 ‘철물점 기봉이 아저씨’로 통하는 그는, 실상은 철물점 차고에 성스러운 채찍과 수갑을 걸어놓고 해질녘 담벼락 아래 나팔꽃마냥 내성적으로, 언젠가 재림하실 마스터를 기다리는 SM 슬레이브였다.

타고난 SM 슬레이브인 이 의뭉스런 캐릭터는, 태생적으로 대사가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극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가죽 마스크를 쓰고 얼굴까지 가려지는 캐릭터였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코미디가 가능한 배우이기를 원했다. 특별한 슬랩스틱 없이도, 표정을 지우고, 눈빛을 감추고, 대사까지 사라져도 웃길 수 있는 배우라는, 난센스한 꿈을 꿨다. 그러나 역할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언감생심, 감히 누굴 바랄 수 있었겠냐만. 정말이지 경이롭게도, 성동일이라는, 바로 그 배우가 그 자리에 털썩 앉아주었다. 일명, ‘엄마야 깜놀 캐스팅’.

성동일이 선 굵은 코미디에서만 빛나는 배우라는 선입견은 단지 한번의 리딩만으로도 깨끗이 깨졌다. 치밀하게 섬세한 디테일들을 거참 타이밍 죽이게 치고 빠지는 곳곳에서의 활약은, 소문난 자객의 잽싼 야밤 활극을 방불케 했다. 만약 이 영화의 두 번째 세 번째 재관람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곱씹는 재미가 있다면 그 9할 이상은 그의 몫이고 그의 덕분이다. 그는, 장담컨대, 숨소리만으로도 웃길 수 있는 배우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농담만 같았던 그의 캐릭터 연기가 영화 끝에 다다르면 태생적 SM 슬레이브가 가진 ‘복종의 간절한 진정성’까지 담아내며 농담을 진담으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웃다가 울컥. 역시, 그 덕분이다.

글 이해영(영화감독) <페스티발><천사장사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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