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10인의 제작. 투자자가 말하는 2001년 [5] - 이태원, 차승재
2001-12-27
2001年 한국영화 결산

이태원_태흥영화 대표

“지금은 추락하지 않는 게 발전보다 중요하다”

1. 무엇보다 <친구>의 성공이다. 800만 관객이란 것은 경이적인 스코어다. 예전 한국영화 시장에선 상상도 못할 수치다. 한국영화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준 사건이라고 본다.

2. 역시 <친구>의 성공이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제도에 의해 금기시됐던 영화라는 점을 주목한다. 사람을 수십번이나 찔러죽이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 아닌가.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확대됐다고 본다. 사전심의에 대한 위헌판결 등이 영향을 줬으리라 본다. 우리 역시 앞으로 경우에 따라선 넓어진 표현의 자유를 활용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3. 남의 영화를 잘 안 봐서 뭐라고 말을 못한다. 하긴 그동안엔 남들 영화를 잘 안 봤는데, 요즘 들어서 <두사부일체>와 <화산고>를 봤다. 다 잘 만들었더라. 그리고 <친구>를 잘 봤다. 리얼하다고 해야 할까. 연기도 훌륭하다. 비판을 받건 뭐가 됐건 손님이 많이 든 영화에는 그렇게 될 만한 장점이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한다.

4. 뭐 큰 문제는 없다. 한 가지 짚는다면 한국영화에 호응하는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그 관객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 질적 향상과 재미를 동시에 줘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엔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려할 만한 것은 너무 관객이 선호하는 영화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액션이니 멜로니 사극이니 장르가 유행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패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성이나 예술성으로 관객을 빨아들일 수 있는 영화도 나와야 한다.

5. 올해는 작품이 없었으니까 큰 목표는 없었다. 사실 우리가 다른 한국영화계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주변에서도 젊은 프로듀서를 고용하라느니, 사람을 쳐내라느니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이 만들어야 할 몫이 있다고 본다. 내년에는 임권택 감독과 칸영화제에서 트로피를 쥐고 싶다는 게 솔직한 소망이다. 또 송능한 감독의 을 비롯해 임상수 감독, 배창호 감독의 신작을 만들 계획이다.

6. 현재처럼 기대치보다 더 잘 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추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영화 붐이 2∼3년은 더 가는 것 아닌가 싶은데, 모르겠다. 아마 그렇더라도 모두가 가만있는데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연기자도 더 개발해내야 할 것 같다.

7. 우리 것으로는 <취화선>이겠지. 다른 회사 영화는 잘 모르겠다. 한남동 구석빼기에 있으니 밖에서 돌아가는 일을 도통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란 게 결과물이 나와봐야 아는 것 아닌가.

차승재_싸이더스 대표, 아이픽처스 공동대표

“지금 상황, 광란의 골드러시다”

1. 조폭영화 트렌드다. 최근 5∼6년 동안은 장르가 다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점이 한국영화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폭발력이 다시 트렌드로 나타나니까 당황스럽다. 이 트렌드도 내년 상반기쯤이면 끝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역시 조폭영화 트렌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그대로 가기로 했다.

3. <파이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미드나잇 카우보이>다. <파이란>은 그 영화에 버금간다. 마지널이라고 해야 하나, 아웃사이더라고 해야 하나,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잘 그려낸 것 같다. 최민식이 딱이고, 감독이 딱이니, 딱 좋다.

4. 내가 투자책임을 맡고 있는 아이픽처스에서 투자한 <고양이를 부탁해> <와니와 준하> 등이 흥행에 실패했다. 물론 메인스트림의 영화가 아닌데, 메인스트림 시장 이외엔 내보낼 곳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결국 산업적 성숙의 문제다. 산업의 크기가 커지고, 두꺼워지고, 시네필이 많아진다면, 강남에도 아트큐브나 하이퍼텍 나다가 생길 것이다. 이런 대안적인 상영관이 서울에 다섯개만 된다면, 비주류영화는 제작비를 줄여서 제작한 뒤 그들 관 위주로 장기상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시장이 형성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5. 흥행 측면에서 봤을 때 시원하진 않다. 그렇다고 우리 영화들의 흥행이 안 된 것도 아니다. 올해 여섯편을 제작했는데, 마이너스난 작품은 거의 없다. 사실 올 한해 동안 작품을 여섯편씩 만든 회사가 없으니 특별히 속상할 일도 없다. 물론 내년에는 좀더 수익성을 강화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작품으로 손님도 드는 영화를 한다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아이픽처스의 경우도 수익성 높은 작품에 투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있다.

6. 한국영화계는 이제 기업화, 산업화의 길에 들어섰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지만 자본축적은 잘되는 것 아닌가. 내년의 화두는 결국 자본이 긴 호흡을 가진 영화에 투자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지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광란의 골드러시라고 생각한다.

7.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등 우리 회사 작품을 빼놓고 말하면 <오아시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이다. 이창동 감독이야 늘 궁금하고…. 가장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성냥팔이…>다. 장선우 감독과 액션이라…. 그 둘은 조합이 잘 안 되는 말이니까. 과연 어떤 식으로 돌파했을까 궁금하다. 물론 홍상수, 임상수 감독의 영화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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