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10인의 제작. 투자자가 말하는 2001년 [1] - 강우석, 강제규
2001-12-27
2001年 한국영화 결산

한국영화를 움직이는 제작, 투자자들은 올해 영화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 그들이 바라보는 2002년 영화계는 어떤 모습인가? 강우석, 강제규, 김동주, 김미희, 김승범, 신철, 심재명, 이강복, 이태원, 차승재 등 투자, 제작자 10인에게 아래 7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어보았다. 그들의 답변 속엔 언제나 제삼자일 수밖에 없는 언론과 달리 현장에서 발로 뛰며 흥행에 일희일비하는 업계의 시각이 투명하게 담겨 있다.




질문내용

1. 올해 한국영화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2. 개인적으로 영향을 준 사건이 있습니까. 발상의 전환을 유발시킨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는지.

3.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좋았던 작품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올해 한국영화계를 돌아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안은 있습니까.

5.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올해 목표했던 것이나 예상했던 것과 크게 어긋났던 일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6. 내년의 한국영화계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7. 내년에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직접 제작하는 작품을 빼고 말한다면 어떤 영화인가요.

강우석_시네마서비스 회장

“<취화선> 투자 받아들여져서 너무 고맙다”

1. <친구>의 흥행은 전국관객 1천만 시대를 예고하는 사건이었지만 영향력에서 비중있는 사건은 CJ와 동양의 멀티플렉스 건설경쟁이라고 본다. 자본과 관련해서는 하나은행이 시네마서비스 영화에 투자하는 신탁상품을 만든 일이다. 연초에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하고 사이더스와 한배를 타는 사건이 있어서 나온 결과지만 이제 돈이 없어서 영화 못 만드는 시대는 지나갔다.

2. 연출자로 돌아와 <공공의 적>을 찍었다는 게 개인적인 가장 큰 사건이다.

3. <친구>는 조폭 소재 영화라지만 끈적끈적한 정취가 있다. 흥행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고 개인적으로는 <시네마천국>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담백한 느낌이 좋았고 <킬러들의 수다>는 장진의 유머감각이 제도권에 정착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신라의 달밤>을 보고는 김상진 감독이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배급하는 입장에선 폭발적으로 흥행이 돼서 좋긴 한데 멀티플렉스들이 지나친 경쟁을 하고 전체 영화산업이 와이드릴리스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이 문제라고 본다. 좋은 영화가 입소문이 나서 잘되는 데 필요한 2∼3주를 못 넘기고 간판을 내리니 문제가 심각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의 흥행결과는 안타깝다. 너도나도 극장을 많이 잡겠다고 나서니까 영화의 수명이 그만큼 단축된다. 이렇게 빨리 프로그램이 바뀌면 관객은 영화 볼 기회를 뺏기게 된다. 메이저 배급사가 저예산영화에 투자해서 직접 관리하든지 멀티플렉스가 한 영화를 3관 이상에서 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5. 극장 몇개 잡았는가로 승부하는 사고, 첫주에 얼마나 관객을 모았느냐로 승부하는 강박관념, 그런 게 짜증난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작품들이 계속 흥행하면서 한국영화가 하향평준화되는 거 아닌가 하는 점도 염려된다. 난 거품론을 옹호하지 않지만 요즘 한국영화 붐이 거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말초적인 자극만 주는 영화가 양산되면 한국영화가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관객이 다시 외화로 발을 돌릴 것이다.

6. 내년엔 적어도 질적으로는 올해보다 나을 것 같다. 난 요즘 우리가 투자한 영화 만드는 제작사에 완성도 떨어지는 영화는 아예 개봉 안 시키겠다는 엄포를 놓고 다닌다. 앞으로 2∼3년간 질적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영화는 갑자기 추락할 수도 있다.

7. <취화선>이다. 개인적인 느낌이 너무 좋다. 작품이 너무 잘 나올 것 같다. 태흥영화사 입장에선 내가 투자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난 오히려 투자를 받아준 태흥영화사가 고맙다. 시네마서비스 투자작 외에는 다른 회사의 내년 라인업을 잘 몰라서 얘기하기 어렵다. 그냥 떠오르는 걸 얘기하자면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이 괜찮을 것 같다. 흥행은 몰라도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강제규_강제규필름

“금융자본과 비메이저 영화사 간 고리 없어 아쉬웠다”

1.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겼다는 사실. 한국영화가 자생력을 넘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지난 10년 동안 노하우를 축적하고 숙련도를 끌어올리려고 영화계가 노력해왔고, 여기에 창조적인 분야를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까지 맞물린 결과다. 감독 층만 하더라도 2∼3년 전보다 두터워졌다.

2. 외부 자극은 없었다. 다만 지난 2년간 과도기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하다보니 너무 서둘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도 편수에 급급할 생각은 없다.

3. 흥행작들은 빼놓지 않고 챙겨봤는데, <엽기적인 그녀>나 <두사부일체> 등 관객과의 공유점을 존중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여 좋았다. 만드는 에너지만으로 종착역인 관객에게 다가갈 순 없는 법이다. 아, 그리고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의 팬이니까.

4. 상업적인 코드든, 감독의 색깔로 승부하는 영화든 그걸 극한으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다. 사회 분위기도 넘치고 과하면 선을 긋고 보호막을 치는 식이고. 이런 상황에서 새로움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조폭영화에 대한 우려만 해도 그렇다. 한해 시장을 장악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나. 홍콩은 몇십년을 우려먹고 삶아먹었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벤처, 금융 자본의 경우 영화쪽에 관심은 지대하지만 쌍방이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지 못해 대규모 메이저 투자배급사 외의 개별 영화사들과 긴밀한 고리가 형성되지 못한 게 안타깝다.

5. 정초에 경포대에서 다짐한 게 있다. 금연과 작품 매진. 다 지켰고 개인적으로 큰 후회는 없다. 흥행작들이 계속 나오면서 <쉬리> 이후 기록에 대한 개인적인 부담도 덜어서 좋다. 다만 <베사메무쵸> 같은 경우 타깃이 30∼40대의 엷은 관객층임을 예상했다면, 그에 맞는 예산을 짰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아쉬움은 있다. 결과적으로 수지를 맞추긴 했지만. 회사로 보면 좀더 많은 감독들이 제작에 매진할 수 있도록 풍성한 재원을 확보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6. 판도 예상 대신 강제규필름의 계획으로 좁혀서 이야기하자. 연초에 직접 연출하는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과 SF영화 그리고 징기스칸을 모델로 한 것 중 한편이 될 것이다. <쉬리2>도 현재 일본의 포니캐넌 등과 합작을 위한 미팅을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다. <쉬리> 때만 해도 기술력이나 자본 부족으로 인해 포기한 게 많았는데, 이젠 세계시장을 겨냥한 뭔가를 내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한국영화의 존재만을 알리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7.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장르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유령> 등에서 감독의 재능을 확인한 바 있어 뭔가 이뤄낼 것 같다. CG나 특수촬영 등등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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