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 이센션 킬링 外
2011-04-26
글 : 김용언
글 : 강병진
글 : 신두영
글 : 송희운
월드와이드 이슈

2010년 한해 동안 칸, 베니스, 선댄스, 아카데미 등에서 화제를 집중시켰던 신작들의 성찬이 펼쳐진다.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시네마스케이프 / 2010년 / 86분 / 영국 / 뱅크시

열정은 감염되는 법이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미국 LA로 이민온 빈티지숍 운영자 티에리 구에타에겐 병적인 습관이 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손에는 항상 비디오카메라가 쥐어져 있었고 그 어떤 사소한 일상도 카메라 렌즈를 비껴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이 파리에서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모습을 처음 찍게 된 티에리는, 곧장 도시 곳곳의 벽면에 자신의 인장 그래피티를 표시한 죄로 경찰이라는 공적 세력에 늘 쫓겨 살아야 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들과 함께할 땐 나도 유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위험을 사랑한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런던에서 처음 출몰하여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을 정복한 수수께끼 같은 아티스트 뱅크시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뱅크시를 촬영하고 싶었던 티에리는 점점 자신도 뱅크시 같은 ‘예술’을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결말에 이르면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뉠 것이다. 이 놀라운 ‘성공’은 앤디 워홀의 뒤를 잇는 현대판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인가, 혹은 아마추어리즘의 자기도취적인 허영인가?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에서 영화를 만드는 주체로 변신한 뱅크시의 흥미로운 데뷔작이자 어쩌면 유일한 작품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는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Nostalgia for the Light

시네마스케이프 / 2010년 / 90분 / 프랑스 / 파트리시오 구스만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거대한 진리에서 한 가지 진실로 주제를 좁혀나간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거대한 천체관측소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피노체트 정권 당시 실종된 사람들이 묻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천문학자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제시한다. “인간 존재의 근간이 되는 우주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어째서 그 탐구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의 역사는 묻어버리는가?” 영화는 철학적이고 비교적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압도적인 우주의 장관들과 함께 보여주면서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진실 속에서 영화는 본질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우주의 진실과 한 나라의 역사,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슬픔을 등치시키는 영화가 탐구하는 것은 결국 삶의 기원이다. 우주만큼 혹은 우주보다도 더욱 위대한 인간의 삶에 대해 이처럼 세련되고 아름답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이센셜 킬링> Essential Killing

시네마스케이프 / 2010년 / 85분 / 폴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헝가리 /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지대, 모하메드(빈센트 갈로)가 미군에 생포된다. 체포 당시 귀 옆에서 터진 포탄 때문에 모하메드의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두건을 뒤집어쓴 채 어디론가 끌려간 모하메드는 포로 운송차량의 급작스런 사고로 튕겨져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북유럽 어딘가의 눈덮인 산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배고픔과 고독와 공포에 맞서 싸우며 모하메드는 어딘지 모를 탈출구를 찾아 헤맨다. 러닝타임 내내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똑같아 보이는 겨울 숲속을 한발한발 내디디며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해치울 뿐이다. 그 압도적인 침묵을 채우는 건 모하메드를 찾는 헬리콥터의 육중한 프로펠러 소리와 사나운 개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서방 세계와 근본적인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슬람교도가 주인공이지만 <이센셜 킬링>은 놀라울 만큼 정치적인 색채를 거세해버린 채 스릴러의 투명한 긴장감에만 집중한다. 얼마 전에 개봉한 피터 위어의 <웨이백>에서처럼 자연과 독자적으로 맞서야만 하는 운명의 가혹함을 스릴러 형식으로 변형시켰다고 해야 할까. 전대미문의 고요하고 기이한 스릴러 <이센셜 킬링>은 201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 수상작이다.



<단신남녀> Don’t Go Breaking My Heart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1년 / 115분 / 홍콩 / 두기봉, 위가휘

애널리스트라는 화려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외롭기 짝이 없는 옌(고원원)에게 두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한명은 잘나가는 건축가였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린 남자 케빈(오언조), 다른 한명은 투자사의 CEO 션(고천락)이다. 케빈은 옌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는 용기를 찾지만 두 사람이 재회하기로 한 날 옌은 창문을 통해 대화를 나눈 션과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평소 자유연애를 즐기던 션은 그날 또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단신남녀>는 두기봉과 위가휘가 함께 연출한 영화다. 밀키웨이 이미지의 초기 시절, 위가휘와 공동연출했던 <니딩 유> <러브 온 다이어트> 등의 로맨틱코미디영화는 각각 대륙으로 편입되어가는 홍콩의 풍경과 스스로 소외된 현대인의 심상을 주목한 작품들이었다. <단신남녀> 역시 홍콩 금융가인 센트럴을 배경으로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진 최근의 풍경 속에 놓인 남녀의 모습을 그린다. 두기봉의 액션영화에서 볼 수 있는 탐미적인 장면들은 없지만, 고층건물의 배치를 활용한 공간 연출은 인물들의 감정과 유머를 매력적으로 드러낸다.



<니콜라이 차우체스쿠의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Nicolae Ceaussesu

시네마스케이프 / 2010년 / 180분 / 루마니아 / 안드레이 우지카

루마니아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루마니아의 사회주의를 이끈 인물이 바로 니콜라이 차우체스쿠다. <니콜라이 차우체스쿠의 자서전>은 30년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차우체스쿠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보여준다. 마치 그가 스스로 일기를 쓰듯이 말이다. 관객은 패기 넘치는 젊은 차우체스쿠의 모습부터 초라하게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 아내와 함께 재판정에 선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또 차우체스쿠 가족들의 휴가 같은 사소한 일상부터 바르샤바조약처럼 역사적인 장면도 목격한다. 방대한 영상기록물을 모은 안드레이 우지카 감독은 매우 객관적인 역사서를 써내려가듯 내레이션이나 자막 없이 영상만을 직관적으로 나열한다. 이채로운 장면은 차우체스쿠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독재자인 김일성과 만나는 모습이다. 영화는 1989년 루마니아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차우체스쿠가 축출되고 재판을 받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잘 아는 군사정권의 어떤 대통령처럼 그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잊혀진 꿈의 동굴(3D)> Cave of Forgotten Dreams(3D)

시네마스케이프 / 2010년 / 90분 / 프랑스 / 베르너 헤어초크

베르너 헤어초크와 고대 예술가들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1994년, 프랑스 남부에서 동굴이 발견됐다. ‘쇼베퐁다크’로 알려진 이 동굴에는 약 3만2천년 전에 그려졌을 수백점의 벽화와 같은 시간 동안 형성됐을 종유석들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몇 안되는 연구자 외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이 동굴에 출입과 촬영을 허락받은 유일한 영화감독이었다. 영화는 동굴이 지닌 미스터리에 흥분하지 않은 채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로 벽화를 담아낸다. 열악한 조건하에서 촬영됐지만 세밀하게 그려진 동물의 형태와 생생한 운동감은 초현실적인 느낌과 함께 정서적인 울림을 함께 전하고 있다. 헤어초크는 동굴의 내부를 촬영하는 한편, 그와 함께 출입을 허락받았던 고생물학자, 고고학자, 미술역사가, 동굴 속의 냄새를 분석한 향수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듣는다. 헤어초크 자신이 그들의 의견에 보태는 건 실존주의적인 충격과 궁금증이다. 벽화를 둘러보던 헤어초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는 지금 우리의 영혼이 탄생한 곳이다.” <스트로첵> <보이체크> <위대한 피츠카를도> 등을 통해 문명화되지 않은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자연의 풍경을 숭고하게 인식했던 그에게 이 동굴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공간이었을 듯 보인다.



<술이 깨면 집에 가자> Wandering Home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0년 / 118분 / 일본 / 히가시 요이치

영화가 시작되면 즐거운 술자리가 보인다. 그 자리의 젊은 여자를 쳐다보는 눈 풀린 남자 쓰카하라가 있다. 술집 한쪽에 있던 그가 갑자기 쓰러진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보드카와 맥주, 사케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가득 산다. 결국 남자는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 변기에 피를 한 바가지 토하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병원에 입원한 남자에게 이혼한 아내와 아이들이 병문안을 온다. 아내와 아들은 아빠의 소변주머니로 장난을 친다. 이미 이런 일을 많이 겪은 것 같다. 보도 카메라맨 가모시다 유타카의 저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삶을 다룬다. 쓰카하라는 알코올중독병원에 입원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가족과의 따뜻한 한끼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 감독은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풀어낸다. 병원에서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쓰카하라만 카레를 못 먹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꽤 유쾌하고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른 환자들과의 우정도 따스하게 묘사된다. 아사노 다다노부가 캄보디아에서 참혹한 살인을 목격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된 쓰카하라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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