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향기어린 악몽 / 골리앗의 여름 / 포르투갈식 이별
2011-04-26
글 : 김용언
글 : 강병진
글 : 신두영
글 : 송희운
낯선 영화와의 조우

회고전 및 특별전으로 집중 조명되는 포르투갈영화, 필리핀영화, 멕시코영화를 마주한다.



<향기어린 악몽> Perfumed Nightmare

포커스 키들랏 타히믹 회고전 / 1977년 / 93분 / 필리핀 / 키들랏 타히믹

키드랏 타히믹은 필리핀의 독립영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다큐멘터리 <향기어린 악몽>은 그의 데뷔작으로 자본주의의 유입과 문명의 파괴를 비롯한 제3세계의 문제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제기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타히믹은 영화에서 지프니(지프를 개조해 만든 당시 필리핀의 대중교통수단) 운전사로 나온다. 매일 아침 미국에서 송출된 라디오를 듣고, 미국의 달 착륙에 열광하던 그는 로켓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르너 폰 브라운의 팬클럽을 조직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염원하던 미국에 갈 수 있게 된 그는 여행 도중 파리와 독일에 머무른다. 그의 눈에 비친 서구는 공사 중이다. 파리의 옛 구역들은 관료적 통제와 자본주의의 폭격으로 파괴되어가는 중이고, 대형 슈퍼마켓이 길거리 상인들을 몰아내고 있다. <향기어린 악몽>은 감독 자신의 여행담을 통해 1970년대 당시 필리핀의 현재, 그리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뒤 목격하게 될 필리핀의 미래를 잇고 있다. 이때 영화의 키들랏 타히믹은 난생처음 문명을 마주한 시골뜨기 청년으로 묘사되는데, 그의 우스꽝스러운 행각은 자연과 어우러진 필리핀과 금속과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서구의 문명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향기어린 악몽>부터 이후 그의 영화적 방식을 찰리 채플린이나 자크 타티와 연관짓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투룸바> <과잉개발의 추억> <누가 요요를 만들었나?> 등의 상영작에서도 유머와 몽환적인 상상력을 실험적으로 끌어안는 그의 독창적인 시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골리앗의 여름> Summer of Goliath

포커스 니콜라스 페레다 특별전 / 2010년 / 76분 / 멕시코, 캐나다, 네덜란드 / 니콜라스 페레다

영화는 실제 인물들과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세 아이들이 있고 그들은 ‘골리앗’이라 불리는 오스카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스카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죽였기 때문에 골리앗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그 사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시작한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사이를 넘나든다.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았다고 믿는 테레사, 총을 갖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싶어 하는 가비노와 알베르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이같이 암울한 마을에서는 누군가가 살해당했다고 해도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다. 영화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현실이 곧 허구가 되고 허구가 곧 현실이 된다. 경계는 사라지고 끔찍한 사건에 무덤덤해져가는 사람들만 남는다. 영화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소통의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들의 직장을 구해주려던 테레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화를 내며 말하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토로일 뿐이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마을의 분위기는 현실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가 아닌 더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다. 그 무력감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2010년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포르투갈식 이별> A Portuguese Farewell

포커스 포르투갈영화 특별전2: 혁명전후 / 1985년 / 82분 / 포르투갈 / 주앙 보텔료

<포르투갈식 이별>은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두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영화는 한 개인의 죽음을 통해 역사를 조망하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의미없이 죽어간 한 개인의 삶과 그 죽음 이후의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묘사한다. 과거인 흑백화면 속에서 군인들은 12년간이나 계속된 전쟁의 무기력함에 빠져 있고, 현재인 컬러화면 속에서 나이 든 노부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며느리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리스본으로 떠난다. 흑백과 컬러 화면의 대조는 과거와 현실을 구분지어 놓으면서 동시에 역사와 개인사를 한데로 묶어놓는다. 아들이 전쟁에서 죽은 지 12년이 흘렀지만, 그 죽음의 변두리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전 부인은 그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죽음과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화는 일정 순간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기 위해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프레임 내에서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응축시킨다. 아들의 죽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부모는 나이가 들고 전 부인은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모든 것은 변하면서 동시에 변하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던진 개울에 물결이 일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마지막 엔딩까지 영화는 모든 순간을 묵묵히 지켜보며 모든 이들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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