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년을 어디서 봤던가. 아마 당신은 이창동의 <시>에서 윤정희의 가슴을 찢어놓는 중학생 손자로 이다윗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서의 얼굴이 손에 잡히지 않는 시처럼 흐릿해 보인다면 <고지전>은 이다윗의 얼굴을 관객의 가슴에 찔러넣을 첫 번째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고지전>에서 이다윗은 열여섯 소년병 남성식이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의 소년은 병사들의 피와 살이 짓이겨진 애록고지에서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가장 처연하게 품고 있는 이 캐릭터는 이다윗과 거의 같은 나이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는 50년이 넘는 세월이 있다. “한국전쟁은 책으로만 배웠다. 당시의 사람들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전쟁이 시작되고 내 친구들이 연필을 버리고 총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고지전> 현장에 가면 그 마음 그대로 무서워졌다.”
이다윗은 격렬하게 고지를 뛰어오르는 현장이 육체적으로 고단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많은 선배들과의 협연이었다고 고백한다. “첫 촬영 전날에야 선배들을 뵀는데… 힘들었다. (웃음) 거의 모든 장면이 선배님들과 같이 나오기에 감독님이 ‘이젠 네 대사를 딸 거야’라고 하면 갑자기 긴장이 됐다.” 그래서 이다윗이 끝까지 겁을 집어먹었냐고? 이런 말을 한번 들어보시라. “그래도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현장에 있을 땐 재미있고, 슛이 들어가면 긴장이 꽉 차오르고, 끝나면 뭔가 촥 풀린 느낌이 든다.” 이미 이 청년이 영화 현장의 알 수 없는 쾌락에 중독됐다는 소리리라.
“요즘 들어서는 어떤 눈빛을 가지고 싶다. 고수 선배, 신하균 선배, 모든 선배님들이 자신만의 눈빛이 있고 거기서 감정이 터져나온다. 눈빛 하나로도 모든 감정을 꺼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다윗은 <고지전> 촬영 이후 젖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조금 청년이 된 듯하다. 아마 당신이 <고지전>을 보고도 길거리에서 이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건 이 소년이 더이상 소년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