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와 아롬이는 정말 무사했을까. <퀵>의 위험천만한 액션은 스타의 헬멧에 가려진 또 다른 기수와 아롬이의 안위를 걱정하게 한다. 배우 이민기, 강예원의 대역을 맡은 송병철 바이크 팀장과 무술팀원 이동민도 <퀵>으로 인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상처는, 한국 최초로 시도한 수많은 스턴트 장면이 남긴 영광의 상처다.
<퀵> 이민기 대역배우 바이크 팀장 송병철
-원래 바이크 액션이 특기인가.
=바이크와 격투기 전문이다. 격투기는 스턴트 일을 하기 전에 킥복싱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어 자신있었고, 바이크는 중학교 1학년 때 스쿠터로 시작해 다양한 오토바이를 거치며 꾸준히 탔다. 아는 형님을 따라 스턴트계에 입문한 지는 18년 정도 된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 <탈주>, 드라마 <아이리스> 등에 참여했다.
-바이크 팀장으로서 <퀵>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이걸 어떻게 찍나 싶었다. 시나리오를 한장씩 넘길 때마다 말도 안되는 얘기들이… (웃음). 특히 건물과 건물을 바이크로 뛰어넘는 신을 읽을 때는, 진짜 뛰어야 하나 싶어 정신이 아찔하더라. 결국 그 장면은 세트 촬영으로 갔지만.
-실제로 그 장면을 촬영할 때는 어땠나.
=손가락이 부러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점프해 바닥에 착지하는데, 손가락이 클러치 사이에 낀 채 내 몸이 앞으로 날아가버렸다. 워낙 액션장면이 많은 영화다보니 앰뷸런스가 현장에 상시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차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결국 그 장면은 다른 액션배우가 연기했겠다.
=그렇다. 그런데 그 친구도 위험했다. 자신있다고는 했지만 바이크 타고 점프를 한번도 안 해본 친구였다. 스턴트맨들은 못하겠다는 소리를 잘 안 한다. 그런 도전정신과 무모함이 없다면 이 세계에서 불합격이란 걸 아니까. 그 친구도 처음 점프했을 때 착지지점 밖으로 튕겨나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신속하게 재촬영을 요구하는 것이 낫다. 생각할 시간을 두면 실패했다는 생각에 더 겁이 날 수 있고, 액션감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퀵> 바이크 액션의 압권은 역시 영화 초반부의 광복절 폭주·충돌 장면이다.
=바이크만 50여대라 통제하기가 힘들었던 장면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찍었는데, 우리쪽 스턴트가 20명, 바이크 동호회에서 나온 분들이 30명이었다. 물론 차에 받히거나 쓰러지는 위험한 장면은 우리가 다 했고, 동호회 분들은 분위기 조성을 했다. 그런데 동호회 분들이 워낙 개성이 강해서 처음에 통제하는 데 애를 먹었다. 나중엔 그분들 사이에서도 대장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에게 도움을 좀 받았다.
-바이크 액션의 기본 컨셉은 뭐였나.
=바이크 액션을 통틀어 전반적인 액션 컨셉은 ‘리얼’이었다. 오세영 무술감독님이 ‘본 시리즈’ 2편인 <본 슈프리머시>를 추천하시더라. 차만 나오는 장면인데도 사람이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전달된다면서. 그 밖에는 <토크> <트리플X> <매트릭스> 등의 오토바이신을 참고했다.
-부상의 위험이 큰 영화였다. 액션에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을텐데.
=특정 액션 장면을 설계하기에 앞서 ‘이게 될까, 안될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스턴트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처럼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촬영할 여건도 아니었다. 이런 경우에는 경험이 곧 과학이다. 어디쯤 갔을 때 뒷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꺾으라고 얘기해주는 게 곧 과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퀵>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 수 있어 기쁘다.
-제작자였던 윤제균 감독이 <퀵2>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다음 작품도 계속 같이 가자고 하신다. 만약 <퀵2>가 제작된다면 <트리플X>에서 시도했던, 차를 타고 가다가 낙하산을 펴고 떨어지는 액션장면을 오토바이로 시도해보고 싶다.
<퀵> 강예원 대역배우 이동민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씨네 히어로즈’라는 무술팀에 소속되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의 양동근을 보며 스턴트맨의 꿈을 키웠다.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 뉴 파트너> <7급 공무원>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에 스턴트로 참여했다.
-스턴트 분야에서 주로 맡는 역할은.
=고등학생 역할이나 여자배우의 대역을 주로 맡는다. 다른 스턴트맨들보다 키가 작고 얼굴이 덜 험악하게 생겨서(웃음) 스턴트맨들이 많이 하는 깡패나 형사 역을 잘 안 시켜주시더라. 여자 스턴트맨도 있지만 차에 치이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아무래도 여자분들이 맡기엔 위험하다. 그래서 <7급 공무원>의 김하늘씨나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이보영씨 액션장면의 대역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요즘은 스턴트우먼들이 너무 잘해서 내가 일이 없다. 위기감을 느낀다. (웃음)
-여배우의 대역을 맡으면 분장도 똑같이 하나.
=메이크업만 안 하지 가발 쓰고 힐도 신고, 의상도 똑같이 입는다. 이번에 <퀵>의 아롬이 대역으로 참여하면서도 가발 쓰고 힐 신고, 아롬이가 입은 것과 똑같은 비닐 재킷을 입었다. 현장에선 너무 바쁘고 정신없으니 그 복장을 그대로 입고 뛰어다닌다. 스탭분들이 내가 그 차림으로 현장을 돌아다니니까 굉장히 신기해하시더라. 너, 힐 신고도 잘 걷네 하시며. (웃음) 창피한 마음은 없다. 이 일이 그냥 재밌고 좋다.
-아롬이를 연기하는 강예원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
=워낙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서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지만 예원씨가 위험한 장면을 연기할 때 “조심하세요”, “괜찮으세요?”라고 종종 말씀해주시더라. 그리고 덧붙이자면 강예원씨가 운동 신경이 좋으시다. 유리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나 위험한 점프를 할 때 뒤에 타는 장면은 내가 촬영했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오토바이로 옮겨타는 장면은 강예원씨가 직접 했을 정도니까.
-가장 위험했던 장면은.
=오토바이를 탄 채로 건물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다. <퀵>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찢어지고 피흘리는 팔이 바로 내 팔이다. 아롬이가 입는 재킷이 팔목이 드러나는 옷인데, 팔에 테이핑하는 걸 잊고 유리 깨는 장면을 촬영했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뒤 아무 생각 없이 팔을 보는데 피가 철철 흐르고 있더라. 참, 유리를 뚫고 들어가면 의상 안에 유리가 다 들어가잖나. 빨리 유리를 털고 병원을 가야 해서 그 자리에서 옷을 다 벗었다. 전 스탭들이 내가 팬티만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봤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정작 그때는 팬티만 입고 있다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퀵>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불안한 긴장이 아니라 즐거운 긴장을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거 하면 위험하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이건 정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앞으로도 <퀵>이나 홍콩영화 <도화선> <살파랑>처럼 드라마를 따라가는 작품이 아니라 액션이 중심에 있는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