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규는 영화에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면을 쓰고 특수효과 복장을 뒤집어써서 등장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의 외형 자체가 오직 CG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린 컬러 특수효과 복장으로 내내 촬영에 임해야 했던 그를 모두 ‘그린맨’이라 불렀다.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연배우와 출연 분량은 맞먹는다. 왜냐하면 사투를 벌이는 배우들과 괴물의 시선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둘의 시선이 어긋난 채로 액션이 이어진다면 그 사실감은 뚝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영화 속 하지원과 안성기는 괴물 대역을 한 그와 싸웠다. “괴물답게 잔인하고 강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영화 현장이 처음인데다 하지원, 안성기 같은 대배우들 앞에서 소심했다. 더 세게 했어야 하는데”라며 웃는다.
‘어릿광대 퍼포먼스’ 공연팀의 단장인 그는 20대 초반으로, 5명의 단원들과 함께 춤과 마임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는데, 놀이공원에서 누구나 봤을 법한 어릿광대 키다리 분장으로 동대문 등 여러 곳에서 공연을 하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괴물 대역은 당연히 스턴트맨이 했으리라 짐작할 테지만 괴물의 몸집이 큰데다 엄청난 높이로 뛰어오르니, 마치 서커스 공연을 하듯 자유자재의 움직임으로 키다리 공연을 하는 그에게 괴물 대역을 맡긴 것은 아이디어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피에로 키다리 장비를 ‘스틸트’라고 부르는데 보통 3단으로 한다. 그것도 능숙해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데 심지어 <7광구>에서는 7단으로 높였다. 괴물의 움직임이 워낙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단원들과 병행해서 할 생각이었지만 7단으로 높여 위험하다보니 그가 직접 다 했다고 보면 된다. 장비의 소재와 무게 때문에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키는 엄청나게 큰데다 복장은 전체가 스판덱스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무겁고 땀으로 젖으면 정말 괴로웠다. 안전문제로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쓰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을 때려야 할 때 가장 힘들었다. “안성기씨는 정말 아팠을 텐데 계속 웃으며 ‘괜찮다’는 말만 하셨다. 촬영이 끝날 땐 나도 모르게 괴물 복장을 한 채로 박수를 쳤다. 오지호씨도 리얼리티를 위해서 세게 때려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세게 때려서 정말 죄송했다. 그때 표정이 좀….(웃음)”
장비가 한보따리니 식사시간도 고역이었다. 어쨌건 괴물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장비를 다 해체하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괴물 복장 그대로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 그래서 높은 위치에 입이 있는 그에게, 그러니까 ‘괴물에게 밥 먹여주는 사람’이 늘 곁에 있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지만 친구가 없던 그를 ‘괴물이 다치면 영화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아꼈다. 그렇게 <7광구> 괴물의 정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서 가장 어리고 귀엽고 왜소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