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한가운데서 <고지전>은 반전을 외친다. 이 지극한 인간애를 보여주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실감나는 전쟁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고지전>은 그 재현에서 지금껏 한국 전쟁영화가 보여주었던 최상의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김우형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은 <고지전>의 시각적 비주얼을 책임진 수장들이다. 100억원대 규모의 작품을 하는 것이 비주얼을 도맡은 이들에겐 도전의 지점이지만 한편으로 분명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참여를 결정한 순간부터 시각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지점, 그리고 험난했던 지난 제작기까지, 그들의 대화에 참여했다.
김우형_부담을 안고 출발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안 한다고 했다가 결국 하게 됐다. 전쟁 장르라면 이미 존재하는 훌륭한 영화가 있다. 내가 뭘 더 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류성희_영화는 어떤 촬영감독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쟁 장르라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김우형 촬영감독님과는 전작 <만추>를 함께했고 워낙 내가 팬이기도 하지만 항상 용감한 선택을 하면서 우아한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싶다.
김우형_미술감독님에겐 <만추> 때는 세트 아니고 로케이션 장소에서 가능한 걸 찾아서 썼다면 여기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신나서 하는 것 같더라.
류성희_<만추> 때도 로케이션 헌팅 다니느라 고생 많이 했다. (웃음) 사실 김우형 촬영감독님이랑 일하는 게 재밌다. 가감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다. 들떠서 구현하고 싶은 거 다 말하면 그걸 쉽게 이해해주신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는 거다. 워낙 말수가 적어서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100시간 이야기해도 전혀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우형 촬영감독님은 소통의 단계들이 훨씬 콤팩트하게 나갈 수 있는 분이다. 두편 했는데도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사이 같다.
김우형_현장에서 늘 동의가 잘될 수는 없다. 싸울 때도 있고 완전히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반드시 같은 생각을 해야 서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나눠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 이런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면 문제일 거다.
류성희_<고지전>은 나도 처음엔 거절하러 갔다가 하게 됐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영화는 우리가 아는 모든 거장이 만들지 않았나. 그 영화들을 보며 자랐는데, 직접 만들 기회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쟁영화는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전투 형태가 달라진다. <씬 레드 라인>의 밀림,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해변 등 영화마다 다 다르다. 한국에서 그런 장면을 어떻게 찍을까 싶었다. 애록고지 전투 자료사진을 찾아보니 그냥 민둥산이더라. 한마디로 그림이 안되는 그림이었는데 그게 확 와닿더라. 폭파된 황토에 사람들이 서 있는 지옥도의 이미지. 벌거벗은 산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싸우는 모습. 중세시대 회화부터 존재했던 큰 그림처럼 이미지들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김우형_작품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전화를 해서 처음엔 시큰둥해하다가 이미지들 보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사실 난 이미지보단 강은표(신하균)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다들 강은표는 하는 일 없이 관조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데 난 그게 나와 가깝게 느껴지더라. 강은표가 6·25 전쟁을 관통한 캐릭터지만 지켜보는 입장인 것처럼 나도 80년대 끝자락에 살았지만 실제로 병이나 짱돌을 던지지 않고 살아왔다. <고지전>이 전쟁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건 결국 이런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일 거다. 시나리오 보면서 전쟁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지 말아야지, 전쟁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아야지 했다. 전쟁영화 하면 유행처럼 계속되는 탈색된 이미지, 들고 찍는 컷, 흔들리는 화면 이런 것들과 좀 다르게 작업하고 싶었다. 처음 본 당시 자료가 황토에 군인들이 서 있는 사진이었는데, 컬러사진인데도 군복과 땅이 황톳빛 한톤으로만 보이는 흐린 사진이었다. 자료사진들에서 본 이 색감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
류성희_당시 ‘피의 능선’ 자료를 보니 처참했다. 오늘 전투에서 이긴 쪽이 다음날 다시 그곳에 새로 요새를 만든다. 그런 다툼으로 참호와 땅굴이 막 엉켜 있는 조그마한 땅덩어리, 손금처럼 쭈글쭈글해진 고통스런 산의 모습에서 그냥 감동이 전해지더라. 고지가 있는 산은 외국처럼 삼림이 우거진 게 아니라 헐벗은 민둥산의 모습이었다. 흙 위에서 수백명이 죽고 죽이는 전투 그 자체가 전쟁을 본질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100억원이란 제작비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 불가능할 것 같은 장면들이 많았다. 험한 고지 촬영을 김우형 촬영감독이 장비도 개발하고 하면서 다 해낸 거다.
김우형_나는 늘 촬영보다 미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선행되지 않으면 찍을 수 없으니 말이다. 사실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장비가 개발되지 않은 건 아니다. 목적에 맞는 장비는 우리도 다 있다. 첫 전투장면에서 전투 자체가 아니라 강은표가 움직이면서 그 전투를 보고 느끼는 장면을 주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경사를 올라간 뒤 그가 바라보는 장면을 연출하려 장비들을 활용했다. 중요한 건 단순히 과거의 전쟁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 맥락을 가진 전투장면을 만드는 거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흙의 황톳빛을 구현하려 애썼다. 채도가 낮은 미국 전쟁 드라마와 다른 화면을 보여주기 위한 출발이었다. 황토를 강조하기 위해 따뜻한 기운을 연출해야 했고, 그러려면 밤신의 달빛이 일반 영화보다 파란빛이 되어야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과거에 쓰던 남포등의 빛이 답이 됐다. 요즘처럼 세련된 노란빛이 아니라 투박하고 거친 황톳빛이었다.
류성희_미술적인 차원에서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는 포탄에 맞아서 처참해진 리얼리티를 가져가되 한편으로는 전쟁이 끝나고 거리를 두고 그 전쟁을 봤을 때 감상이 있다. 두 가지 관점을 반영해서 조화를 이뤄야 했다.
김우형_실질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은 포항 전투신이었다. 제일 나중에 합류했는데, 스탭들이 모두 ‘포항’, ‘포항’ 이러고 다녔다. 내가 악어중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강은표 같았다. 가장 미스터리한 신이었다. 전 부대원들에게 남은 트라우마를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니 말이다.
류성희_맞다. 스탭들의 트라우마였다. (웃음)
김우형_그 장면은 지옥 같은 장면이어야 했다. 관객에게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한컷이 필요했다. 해답은 미술감독이 준 컨셉 드로잉이 있었는데 거기서 찾았다.
류성희_비주얼적으로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역시 고지가 재현된 장소였다. 경남 함양에 있는 백암산이 무대였는데, 여긴 뒤늦게 발견했다. 장훈 감독이나 김우형 촬영감독과도 작품으로 인연이 닿은 것처럼 이 산과도 인연이 있어서 만났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전주의 너른 부지를 생각하고 있다 능선이 많은 백암산 지형에 따라 다시 디자인했다. 원래 해놓은 걸 다 뒤집어야 하니 처음엔 스트레스도 좀 있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마치 작전사령관이 된 기분이 들더라. (웃음) 다른 영화에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걸 해본 거다.
김우형_합류가 늦었지만 나도 경험할 건 다 경험했다. (웃음) 현장이 너무 동시다발로 이뤄져야 해서 감독님도 힘들었을 거다. 매번 영화할 때마다 느끼지만 영화 작업이 처음부터 매뉴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진다. 그러니 처음 계획대로 되지않아 나중에 그 숏을 급조된 계획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 장면이 나쁜 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영화를 볼 때 그걸 온전한 텍스트로 이해하고 따라가듯이 말이다. 모두들 100억원대 영화를 만든다는 부담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자책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류성희_정말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데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건 스탭들의 기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렇게 규모가 큰 작품들은 힘든 과정을 통해서 다 같이 재미를 느끼게 된다.
김우형_육체적으로 힘든 건 견딜 수 있다. 추위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근데 이번엔 태어나서 제일 추웠다. (웃음)
류성희_미술팀, 세트팀, 소품팀, 의상팀, 모두에 고맙다. 다들 전쟁영화로 한 단계 나아가자 하는 결심이 있어서 의상 하나, 총하나에 충실하려 했다. 이베이를 통해 수집가에게 당시 의상을 구하기도 했다. 미술세트도 짓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다 하고보니 뿌듯하더라. 지어놓고 끝난 게 아니라 그 뒤 3개월도 전쟁이었다. 몇 백명이 흙더미에서 뛰니 한번만 촬영하면 애써 지어놓은 게 다 무너진다. 아무리 주의를 줘도 소용이 없다. 촬영감독님이 가장 안 무너트리려고 노력했다. (웃음) 여자고 남자고 스탭들 모두가 복구작업하느라 하루에 1천번씩 곡괭이질을 했다. 컷 하면 다시 곡괭이질하는 모습을 보니 꼭 농경사회 같더라. 그 정도 힘들면 도망가는 사람도 생기고 할 텐데. (웃음) 스탭들에게 감동했고 고마웠다.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할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낀 거는 영화는 정말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구나 하는 거였다. 겸허해지더라.
김우형_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순간이라고 볼 때 그 직전까지의 노력은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영화를 만들다보면 템포나 외형이 가장 많이 결정되는 곳이 편집실 같다. 현장에서 템포를 이야기하는 게 더이상 힘들어졌다. 현장에선 최대한 여러 가지 소스를 편집실로 넘기려고 한다. 그러니 현장에서 감독의 의도를 알기는 더 힘들어졌다. 필름으로 작업할 때 조심스러웠던 것들이 디지털화되면서 지금은 부담이 훨씬 덜해졌다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류성희_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많이 개봉한다. 관객이 100억원 넘는 블록버스터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 것이고, 이 경우에 비주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걸 CG나 3D 같은 방식의 기술력으로 풀 수 있다. <고지전>은 좀 다른 방식이었다. 제작비에 비하자면 ‘수공작업’과 같다. 이 영화는 못 보던 것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에게 비주얼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구식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 이런 규모의 블록버스터가 나올 때 물리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작업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런 종류의 작품을 다시 만들 때 그 프로젝트가 사장되지 않고 제작비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외면하지 않고 한국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