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 리스트는 오히려 무술을 바탕으로 한 아시아에서 막강하다. 원조라면 역시 호금전의 <대취협>(1965)에서 춤을 추는 듯한 우아한 몸놀림으로 신기의 칼솜씨를 뽐냈던 ‘금연자’ 정패패다. 리안이 <와호장룡>(2000)에 ‘푸른 여우’로 그녀를 캐스팅하며 오마주를 바친 것은 유명한 일. 이후 쇼브러더스는 수많은 여전사들을 양산했는데,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가문의 남자들이 모두 전사하자 과부가 된 집안 여자들이 양씨 가문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14인의 여걸>(1972)도 기억해둘 만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하리리는 <여살수>(1971)와 <수호전>(1972) 등으로 유명하며 능파는 바로 이한상의 <양산백과 축영태>(1962)에서 베이징 오페라의 전통에 따라 남자 역할인 양산백을 연기한 배우다.
이후 그 계보는 호금전의 <영춘각의 풍파>(1973)와 <충렬도>(1977)에서 주연을 맡고 <흑권>(1973)과 <흑연비수>(1973) 등에 출연한 모영, <정무문>(1972)과 <맹룡과강>(1972)에서 이소룡의 파트너로 출연한 묘가수, <장배>(1981)나 <오랑팔괘곤>(1984) 등 유가량 사단 영화들에서 줄곧 주연을 도맡았던 혜영홍으로 이어진다. 모영은 <용쟁호투>(1973)에서 이소룡의 플래시백에 등장해 죽임을 당하는 여동생, 혜영홍은 최근 엽위신의 <천녀유혼>에서 나무 요괴를 연기한 배우다.
아마도 홍콩 영화계 여전사 계보의 종결자는 바로 ‘예스마담’ 양자경일 것이다. <예스마담>(1985)을 시작으로 그 인기에 힘입어 번외편 격인 <중화전사>(1987), <통천대도>(1987) 등에 출연했다. 이후 양리칭이 그 캐릭터를 이어받으면서 <자웅대도>(1988), <직격증인>(1989) 등의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 시리즈를 본떠 만든 <패왕화> 시리즈의 호혜중과 이세봉, 본격 여전사라고 하기엔 모호한 <철갑무적>(1988)의 엽천문, 그리고 비슷한 시기 함께 활동했던 신시아 로즈록(나부락)도 빼놓으면 섭섭할 이름. 양자경은 이후 <007 네버다이>(1997)는 물론 <동방삼협>(1993), <영춘>(1994), <양자경의 스턴트우먼>(1996), <검우강호>(2010) 등 최근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아시아권 여배우 중에서는 독보적인 여전사로 남아 있다.
일본과 한국도 빼놓으면 아쉽다. 무엇보다 일본 최고의 여전사는 <붉은 모란> 시리즈의 오류, 후지 준코다. <여자 야쿠자>(1968)를 시작으로 7편 <명 거둬갑니다>(1971)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당한 뒤 어깨에 붉은 모란 문신을 새기고 복수의 여정을 떠난 여자다. 민첩하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단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그야말로 우아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 영향을 준 <수라설희>(1973)와 <여죄수 사소리> 시리즈에서 서늘한 매력을 뽐냈던 가지 메이코도 그에 못지않은 이름.
한국에서는 금연자나 예스마담, 붉은 모란 등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 뚜렷한 여전사 캐릭터를 찾기 힘들다. 그저 <홍콩에서 온 마담장>(1970), <산동 여자물장수>(1983), <여걸 청나비>(1983) 등 작품 제목으로 기억되는 정도다. 본격적으로 무술을 익혀 영화에 등장한 경우라면 <꼭지딴>(1990)의 최진실, <흑설>(1990)의 이진, <조폭마누라>(2001)의 신은경 등이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TV시리즈 <다모>를 비롯해 <형사 Duelist>(2005), <1번가의 기적>(2007), <7광구>(2011)에 출연한 하지원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