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상업영화를 만들려 한다.” 박찬경 감독의 다짐이 낯설다. 그의 전작들이 머릿속에서 들어차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과 공동 연출한 <파란만장>은 아이폰 촬영이라는 형식적 실험을 한 영화이고, 중편 <신도안>은 무속신앙과 한국 근대사를 접목시킨 실험적 다큐멘터리였다. 첫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과거와 현재가 이종 교배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었다. 그의 발언은, 적어도 그를 대중영화에서 벗어나 보이게 했던 이 모든 시도에 대한 ‘No’를 뜻한다. “원래 미술작업을 하다 영화 연출로 전향한 이유가 좀더 많은 대중과 소통을 원해서였다.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상업영화는 내 작품의 지향점이다.”
그가 던진 승부수는 ‘공포’다. <신은 번개처럼 내린다>(가제)는 진짜 무서운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카드다. 신-신도시에 사는 하급 여경찰 연희. 잇단 투신자살 사건을 목격하게 된 그녀는 물에 젖은 귀신 모녀를 목격한 뒤 무병을 앓는다. 영화는 운명에 따라 신내림을 받은 연희가 동료 형사와 함께 연쇄투신자살을 조사하면서 본격화된다. 이 과정에서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수몰화 작업, 이장도 하지 않은 채 물속에 잠겨버린 한 가족의 선산과 얽힌 비밀이 속속 밝혀진다. 앞선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가져왔던 무속신앙이 역시 화두가 된다. “J호러 스타일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포영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무속에 기반한 K호러에서 그 답을 제시하려 한다.” 힌트를 얻은 건 무속인을 다룬 전작 <신도안>(2008)이었다. “상영 도중 사람들이 무섭다며 도망가더라. 공포를 불러오는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익숙한 것이 금기가 될 때, 그것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입각해보자면 근현대사를 거치며 철저하게 억압되어온 한국의 무속은 그 가정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다. 공포를 말할 때 흔히 하는 ‘등골이 오싹하면서 머리가 쭈뼛 서는’ 상투적 표현은 무당들이 실제 겪는 몸의 체험이다. 박찬경 감독은 이 강도 높은 물리적 압박을 스크린에서 재현하려 한다.
미술과 영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흑백과 컬러의 색감, 음악과 대사, 어느 하나 구속되거나 경계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는 무한 중첩의 세계. 전작에서 구현됐던 경탄할 만한 장면들이 공포 장르로 치환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참나무가 늘어진 서양식 고딕 호러와는 다른, 최근 들어 좀체 사용하지 않았던 한국의 산과 바다, 지형지물이 공포의 귀중한 재료로 적극 활용된다. 신-신도시의 삭막한 풍경 아래 갓 쓰고 소복 입은 귀신이 도시를 습격하는 이미지와 더불어 꿈과 환상을 활용한 공포판타지가 여기에 접목된다. 박찬경 감독은 이를 두고 로컬색을 살린 ‘아시아고딕’으로 규정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공포를 지향하지만 <신은 번개처럼 내린다>는 그들이 가진 예술성은 배제한 좀더 장르적인 접근, 다리오 아르젠토식의 전통적 공포에 가깝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구현할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소는 극대화된 신도시의 모습이다. 개발의 최정점으로 소비됐던 아랍의 두바이 같은 도시가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도시에 출몰한 유령들을 통해 우리가 목도할 공포는 초고속 성장으로 인해 전통과 단절된 한국사회의 거울과 같은 존재들이다. 한국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백배 올려줄 그의 작품은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