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8주 후> 그러나 한국형으로
2011-11-15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

“도대체 이 작가, 어쩌려고 이걸 쓴 건가 싶더라.” 감독 박정우가 작가 박정우의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든 생각이란다. 변종 기생충 연가시의 출현,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재난 사태. <연가시>는 이 아비규환 속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김명민)의 이야기다. 바이러스의 출몰로 인한 재난영화, 충무로엔 분명 없던 얘기가 온다.

-<연가시>는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
=3년 전쯤 KBS에서 아마추어 시나리오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참가한 출연자에게 연가시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템이 좋아 책으로 발전시켜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최근 연출을 오래 쉬다보니 쫓기는 마음이 생기더라. 내 아이에게도 아버지의 대표작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때 이 작품이 떠오르더라.

-<바람의 전설>과 <쏜다>가 장르는 다르나 모두 일탈에 대한 주제의식으로 연결된다면 이번 작품은 의외다.
=기생충이 가지고 있는 습성상 영화적으로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아이템이다. 곤충이 아닌 사람을 숙주로 번식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해보았다. 9개의 다른 버전으로 책을 썼다. 그중 구제역과 연결된 버전도 있었다. 소재와 이야기를 어떤 배에 띄우느냐는 기존의 내 주제의식과 다르지 않지만 사회적인 이야기는 껍데기다. 오히려 사람 사는 이야기에 초점을 뒀다.

-바이러스라는 소재의 차별화가 있지만 충무로 재난영화는 무리수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거다. 할리우드에선 익히 보아온 이야기고 비교될 소지도 크다. 내 공력으론 그들 영화를 능가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국적 정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난영화의 틀을 따르되, 사람 냄새 나는 재난영화를 찍고 싶다.

-치밀한 조사와 타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전문 소재다.
=이론 정립이 안돼 주인공들이 허공에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생물학, 약학, 재난 매뉴얼, 제약회사 등.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완벽을 기해도 영화에 트집잡을 요소가 생길 거다. 그런데 그걸 모두 해결하다가 보면 영화가 아니라 보고서가 된다. 적당한 접점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장르적 특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규모와 비주얼적 구현에 대한 복안은 무엇인가.
=제일 뒷골 당기는 고민이다. 제작비가 많지 않은데 시나리오를 보면 그 한계를 능가한 사이즈다. 원래 강박적으로 남의 작품을 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레퍼런스가 될 작품들을 모두 봤다. 시각적 모티브로 삼은 건 <28주후>다. 위기감과 공포감을 극대화하려 한다.

-난국을 헤쳐나갈 영웅으로 김명민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지에서 가족을 구해내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지나 자신의 꿈 대신 가족을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의 정서를 담고 싶다. 명민씨는 그런 면에서 안심과 믿음을 주는 배우다.

-전작에서 관객이 코믹함을 기대했고, 그 부분에 대한 배신을 질타당하지 않았나. 이번엔 장르적으로 아예 코미디와는 결별했다.
=도무지 코믹함이 들어올 틈이 없다. 장르적으로 이런 사태에 대비하는 정부 정도가 희화화할 수 있는 요소인데 너무 전형적이라 빼버렸다. 다들 박정우가 썼다고 하면 웃을 준비 하고 보는데 그래서 책 표지에 ‘박정우’라는 크레딧을 빼고 돌렸다. <쏜다>처럼 ‘이 영화 코미디 아닙니다’라고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장르라 나 역시 결과가 궁금해진다.

-<쏜다>를 발표할 당시, <간다> <난다> 3부작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알다시피 <쏜다> 스코어가 부진했다. <바람의 전설>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없이 했지만 결과가 안 좋았고, <쏜다>는 작가로 성공했던 요소를 적용한 다소의 타협안이었다. 그럼에도 <쏜다>의 결과가 안 좋았으니. 현실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그 이야기를 꺼낼 시기는 아니다.

-연출가로서의 부진과 폐해를 극복할 승부수인 만큼 각오도 남다르겠다.
=영화계 20년 생활, 엄밀히 말하자면 감독을 목표로 달려왔다. 나도 감독으로서, 이야기꾼으로서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박정우는 작가가 맞지 않나’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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