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리스트 02. 웬만해선 그들보다 웃길 수 없다
2012-01-24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 12월30일, 삼척 덕산항 패류 임시 보관장 앞 항구. 신정원 감독의 신작 <점쟁이들>에서 이곳은 ‘울진리’란 마을이다. 몇 십년 묵은 악령이 의문의 사건사고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이곳에 전국 각지의 엄청난 점쟁이들이 모여 한판 굿을 벌인다. 악령의 거대한 힘에 많은 점쟁이들이 도망치고 5명의 점쟁이와 1명의 기자가 남는다. 이날은 과거 마을 앞바다에 침몰한 보물선과 악령의 관계를 알아낸 이들이 배를 빌리려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난리예요. 난리. 완전 난리법석. (웃음)” 배우 이제훈의 말마따나 제각각의 의상을 갖춘 점쟁이들은 정신이 없다. 김수로와 이제훈은 쓸 만한 배를 찾다가 각종 집기를 넘어뜨리고, 타로점술가를 연기하는 우리와 꼬마 점쟁이를 맡은 양경모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뛰어다니고, 강예원은 마을 청년에게 배를 빌려달라는 말을 숨도 쉬지 않고 반복한다. 조감독의 무전기로 신정원 감독의 ‘컷’ 소리가 들렸다. 배우나 스탭할 것 없이 웃음부터 털어놓았다.

현장은 애드리브의 연속이다. 취재 전 미리 받아본 시나리오와 신정원 감독이 아침에 다시 썼다는 시나리오가 달랐고, 배우들의 연기는 또 달랐다. 수많은 작품에서 뇌리에 박힐 애드리브를 만들어냈던 김수로까지 “워낙 열려 있는 현장이라 다른 작품보다 애드리브의 여지가 많다”고 할 정도다. 대사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까지 바뀌는 모습이 의아했다. 김태훈이 연기하는 마을 청년은 한 시간 전만 해도 꽤 진지하고 무서운 인물이었다. 한 시간 뒤에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사이코가 되어 있었다. 기자 찬영을 연기하는 강예원이 배와 잠수장비가 필요하다며 얼마면 빌릴 수 있냐고 정신없이 묻자, 이전 촬영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김태훈이 갑자기 “돈 많아? 얼마나 있는데?”라고 받아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예원이 그럼에도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 사실 카드밖에 없는데, 할부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혹시 NG가 아닐까 싶은 웃음이 비쳤다. 그래도 신정원 감독은 컷을 하지 않았다.

신정원 감독

<차우>에서도 NG장면을 넣은 적이 있다는 신정원 감독은 “단지 웃긴 장면을 만들려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시나리오가 있지만, 막상 공간을 보고 배우가 의상을 입어보면 시나리오가 말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어떻게 이런 대사를 하지?’ 싶은 거예요. 여기서 원래 대사가 ‘드디어 내 정체를 알아냈군’ 이런 건데, <파워레인저>도 아니고…. (웃음)” 물론 “이제 물이 올라서 상황만 던져주면 알아서 만드는 경지가 된” 배우들의 힘이 크다. 이제훈은 “‘과연 이래도 될까? 너무 망가지는 거 아닌가?’ 라는 행동의 제약을 갖게 마련인데, 그걸 깨버리는 상황이 즐겁다”고 말했다. <시실리 2km> <차우>의 기가 찬 웃음들이 다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일부러 읽지 않으려 했던 시나리오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폈다. 현장에서 들은 신정원 감독의 이야기와도 전혀 다른 색깔의 유머로 가득한 <점쟁이들>이 나올 게 분명했다.


“<시실리 2km>를 보고는 (임)창정이가 너무 부러웠다. 신정원 감독의 코미디 감각이 너무 좋아서 따로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했었다. 드디어 그와 함께하게 됐다.”-김수로(가운데)

이제훈의 애드리브 연기는 김수로 못지않았다. 눈 주위가 검게 변해가는 상대배우에게 “검은깨를 많이 먹어서 부작용이 생긴 거야”라는 희한한 대사를 던지기도. 신정원 감독은 그 대사가 재밌다며 계속 해달라고 얘기했다.

강예원은 <점쟁이들>에서 수중촬영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50kg에 달하는 각종 잠수장비를 메고 수조에 들어갔는데 완전 죽는 줄 알았어요.”

김수로의 루이비통을 주목하라

<점쟁이들>의 기상천외한 의상들
평소 점 보는 걸 상당히 싫어했다는 신정원 감독은 점쟁이들의 외양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현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박 선생을 연기하는 김수로의 하얀색 양복과 하얀색 구두였다. 거기에 루이비통 핸드백이 화룡점정이다. “원래는 한복을 입어볼까 했는데, ‘콘스탄틴’ 컨셉이라며 이렇게 맞춰줬어요. 이 핸드백이 박 선생의 성격 그 자체예요. 어디를 가나 사인을 해주는 스타이자 돈을 많이 벌고픈 점쟁이거든요. 제작사 미팅하러 갈 때, 똑같은 백을 가져갔는데 감독님이 재밌다고 해서 설정한 거예요. (웃음)” 오토바이 선수 복장과 비슷한 이제훈의 의상도 예사롭지 않다. 극중에서 그는 MIT 공학박사 출신의 점쟁이인 석현을 맡았다. 공학적 지식과 뛰어난 아이디어로 퇴마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손수 만드는 점쟁이다. 한손에 든 레이더는 아마도 악령의 기운을 탐지하는 듯 보이고, 목에 건 고글은 악령을 보는 기계인 듯싶었다. “이렇게 완전무장을 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어요. 목과 손에도 그림을 그려놨는데, 이런 세밀한 소품과 디자인 하나하나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웃음)” <점쟁이들>에서 기상천외한 의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천도제 장면일 것이다. 강시를 때려잡는 영환도사 복장의 점쟁이에서 어우동, 칭기즈칸 등의 컨셉을 차용한 의상을 입은 약 60명의 점쟁이들을 볼 수 있다. 신정원 감독은 이들이 모인 상황에서 “예상치 않은 에너지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왔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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