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리스트 07. 아부의 A부터 Z까지, 흐흐흐~
2012-01-24
글 : 신두영
사진 : 오계옥
정승구 감독의 <아부의 왕>

송새벽이 얼굴에 점을 붙이고 나타났다. “저, 원래 점 없어요. 오늘 처음 붙였거든요. 하필이면 이날 오셨대…. (웃음)” 말쑥한 정장 차림에 특별한 표정이 없지만 점 하나 붙인 것만으로도 송새벽은 벌써 웃기다. 정승구 감독의 <아부의 왕>은 대쪽 같은 성격의 보험회사 사원 동식(송새벽)이 부모의 사채를 갚기 위해 아부의 A부터 Z까지 알고 있는 ‘혀’고수(성동일)를 만나 ‘아부의 왕’으로 변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영화다.

서울 강남의 한 인테리어 디자인 전시장에서 진행된 이날 촬영분은 동식이 아부해야 하는 홈쇼핑 회장의 측근인 예지(김성령)의 사무실을 찾는 장면이다. “내부 레이아웃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무실처럼 꾸몄다”는 미술감독의 말처럼 인테리어 전시장은 갤러리 같은 특별한 분위기의 사무실로 변해 있었다. 이 사무실의 주인 예지는 이름처럼 어떤 예지력이 있는 인물이다. 동식에게 큰 항아리에 담긴 긴 검은 대나무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차는 티코인데 벤츠 제치고 고속도로를 제대로 달리네.” 동식이 얼굴에 점을 붙인 이유도 예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혀고수의 아이디어였다. 출입문에 손금 인식 장치가 달려 있을 정도로 관상 등 동양철학을 중요시하는 예지는 동식의 점에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차~ 암 좋다. 그 점.” 그러다가 갑자기 동식의 목을 확 잡아당긴다. 동식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예지는 혀고수의 존재를 눈치채고 점을 떼버린다. 컷 사인과 함께 배우들은 감독이 있는 모니터로 달려간다. “카메라쪽으로 좀더 들어와주세요.” 정승구 감독은 배우들과 모니터를 보며 동선에 대해 지적한다. “좀 시게 눌러주세요~.” 송새벽은 다시 얼굴에 점을 붙이는 분장팀 스탭에게 말한다.

예지가 대나무를 보면서 동식의 운을 점치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항아리는 정승구 감독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투입한 소품이다. 전시장 소품은 꽤 고가다. “이거 하나에 32만5천원이에요. 항아리 깨지면 큰일나요. (웃음)” 리허설 때 정승구 감독은 김성령에게 신신당부한다. 전시장 소품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사실 <아부의 왕>에서 진짜 값비싼 요소는 배우들이다. <방자전>의 코믹 캐릭터로 주목받고 <위험한 상견례>로 코미디영화의 확고한 주연으로 자리매김한 송새벽과 ‘애드리브의 왕’ 성동일 콤비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고창석까지 합세한다. “저는 진짜 만족합니다. 첫 영화

동식(송새벽)이 어기적어기적 예지(김성령)의 사무실 입구에 들어선다. 정승구(오른쪽) 감독은 송새벽(왼쪽)의 동작 하나하나와 고개의 각도까지 꼼꼼하게 지적했다. 에 이렇게 훌륭한 캐스팅이라니요.” 정승구 감독의 말처럼 <아부의 왕>은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코미디가 될 듯하다. 정승구 감독은 촬영 도중 모니터로 지켜보면서 “흐흐흐~” 소리를 내며 자주 웃는다. 그는 주로 송새벽의 표정에 반응했다. 첫 번째 관객이기도 한 감독이 이렇게 즐겁게 보는 영화라면 관객도 배꼽 잡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부의 왕>은 4월 개봉예정이다.

동식(송새벽)이 어기적어기적 예지(김성령)의 사무실 입구에 들어선다. 정승구(오른쪽) 감독은 송새벽(왼쪽)의 동작 하나하나와 고개의 각도까지 꼼꼼하게 지적했다.


“새벽아, 얼른 와~.” 김성령은 컷 사인이 나면 모니터 앞으로 달려와 송새벽을 불렀다. 정승구 감독과 배우들은 한컷 한컷 의견을 교환하며 촬영했다.


김성령은 자신의 분량을 위해 오래 기다렸다. 정승구 감독은 “극중에서 예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이라 힘을 주려다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빨간 액자 안에 스캔된 동식의 손금이 CG로 만들어진다.


출입문에 설치된 손금 인식 장치에 송새벽이 손을 댄다. CG 업체 관계자는 송새벽에게 “눈으로 놀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인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하는…”

정승구 감독과 송새벽, 김성령, 성동일을 만나다

현장에 도착한 성동일이 야식으로 피자를 사왔다. 잠깐 촬영을 멈추고 스탭들이 피자를 나누어 먹는 사이 정승구 감독, 송새벽, 김성령, 성동일이 한자리에 모였다. 따뜻한 난로 앞에 모인 이들의 대화를 엿들어보았다.

-정승구 감독도 그렇고 송새벽도 너무 조용조용하더라.
=송새벽_감독님이 진득하고 조용조용하고 꼼꼼하고 연기자에 대한 배려심도 깊고 그렇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심심하겠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워낙 감독님이 디테일한 면이 있으셔서. (웃음)

-같이 하는 배우들의 복이 많은 것 같다.
=송새벽_일단 우리 아부의 왕인 성동일 선배와 이번에 처음 같이 하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성격도 저기 하시고 해서 속으로는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편하게 대해주셨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친해졌고 술도 많이 사주시고. (웃음) 김성령 선배님은 워낙에 또 미인이시라 말을 잘 못 걸겠더라. 김성령_할 말이 없지. (웃음) 송새벽_미인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하는…. 여기까지.

-아부의 고수인데 이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동일_애정은 뭐. 늘 해오던 밥벌이니까. 우리 김(성령) 배우님이 하신다는 얘기 듣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송)새벽이 하고도 해보고 싶고 출연료도 좀 괜찮고 삼위일체가 다 맞아떨어졌다.

-예지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김성령_예지는 예지력이 있는, 어떻게 보면 특이한 인물인데 감독님이 일상적인 느낌으로 가길 원하셨다. 만들어진 캐릭터보다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운 것 같다. 감독님이 연출을 섬세하게 해주셔서 현장에 올 때 설렘과 긴장도 있지만 마음 편하게 온다.

-<밀양>의 조감독 출신이다. 코미디영화로 데뷔하는데 좀 의아한 부분이다.
=정승구_<밀양> 조감독 출신이 <아부의 왕>을 연출한다고 하면 90%는 다 의아해하시더라. (웃음)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으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2008년 미쟝셴단편영화제에서 희극지왕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게 계기가 돼 연출 제의를 받았다. 이창동 감독님도 그 영화를 보고 코미디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시더라. 김성령씨가 얘기했듯이 과장된 상황에서 배우들이 진지하면 그게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개연성있는 코미디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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