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리스트 05. “우리 영화는 귀여워야 해!”
2012-01-24
글 : 김도훈
사진 : 최성열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크리스마스가 이틀 지난 양수리. 음기가 가득하다. 양수리 세트, 정식으로 말하자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남양주종합촬영소는 깊은 산을 깎아 계곡처럼 세워졌다. 겨울이면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음기가 으슬으슬 모여든다. 김조광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실내 세트에도 음기가 가득하다. 한국 퀴어시네마 진영에서 큰언니로 통하는 김조광수 감독의 기골찬 음기 때문인가 싶었더니 프로듀서가 얼른 난롯가로 오라 손짓하며 말한다. “춥죠? 소음 때문에 온풍기를 틀 수가 없어요.”

차가운 건 양수리의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주인공 커플의 아파트 세트 역시 모델하우스처럼 차갑고 메마르다. “가방 하나에 짐 싸들고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삭막한 아파트로 설정해서 그래요.” 김조광수 감독이 말한다. “가짜로 결혼해서 사는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 집이라서 사는 흔적이 도무지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바로 옆에 있는 레즈비언 커플의 집은 따뜻한 공간으로 설정했고요. 그래서 진짜 레즈비언 커플 집을 빌려서 촬영했어요.” 보금자리처럼 보이지만 진짜 삶은 없는 모델하우스처럼,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은 모두가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삶을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의사 동료인 게이 민수(김동윤)와 레즈비언 효진(류현경)은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다. 그들이 대신 택한 옵션은 위장결혼이다. 신혼집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건 민수와 애인 석(송용진)이고, 옆집에는 효진과 애인 서영(정애연)이 산다. 물론 이들의 위장결혼은 엄청난 위기들에 봉착할 예정이지만, 오늘 현장의 위기는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이다. 류현경이 세트에서 걸어나오면서 말한다. “너무 싫다. 나 진짜로 결혼 안 할 거야. 시어머니 너무 무서워.”

두 커플이 사이좋게 앉아서 모래성 같은 위장결혼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감독의 외침이 터져나온다. “더 러블리하게!” 그러고보면 감독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러블리’와 ‘귀엽게’다. 컷 소리가 나는 순간 김조광수 감독은 네 배우들에게 연신 “귀엽게 해야 해 귀엽게. 우리 영화는 귀여워야 해!”라고 요구한다. 이건 혹시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의 강박일까. 그러니까, 동성애자의 삶을 보다 달콤하고 유쾌하게 일반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 말이다. “강박? 있어요. 처음부터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구조적인 부분에서가 아니라 톤과 매너에서 말이에요. 물론 현실적으로 어두운 면을 어떻게든 안 보여줄 순 없죠.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주인공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들 말이에요. 그걸 극대화해서 정확하게 보여준다면 전체적으로도 어떤 균형이 잡힐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27일 현재 6회차 정도의 촬영을 남겨둔 이 퀴어로맨틱코미디는 올 4∼5월 즈음 관객을 찾는다. 물론 그 관객에는 이성애자도 포함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한 퀴어 로맨틱코미디다. 이날 현장의 ‘베드신’ 역시 농염하다기보다는 풋풋하고 예쁘다.

민수(김동윤)와 석(송용진)이 한 침대에서 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민수의 엄마 때문에 깨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두 배우에게 자연스러운 커플처럼 느껴져야 한다며 팔의 자세나 배개의 위치 등을 (경험을 토대로) 꼼꼼하게 조정해준다.


네명의 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민수 역은 <두근두근 체인지>의 김동윤이 연기한다. 감독이 “에너지가 좀 처져 있는 것 같은데?”라고 하자 “아니에요. 에너지는 그대로예요!”라고 씩씩하게 외친다.


게이 감독이 찍는 영화라 어째 여배우들보다는 남자배우들을 더 챙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류현경의 불만이 귀엽게 터져나온다. 김조광수 감독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웃는다. “예쁘게 보이려면 레즈비언 감독이랑 해! 아니면 직접 반사판 들고 다녀! (웃음)”

민수와 효진의 위장결혼 사진.

미래의 남자 스타들, 여깄네?

김조광수 대표에게 배우 캐스팅에 대해서 묻다
김조광수는 남자 보는 눈이 탁월한 사람이다. 올해 결혼식을 올릴 거라 선포한 8년째 열애 중인 연인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물론 김조광수의 연인이 귀엽고 착하고 진국인 남자인 건 사실이지만, 제작사 청년필름의 대표로서 혹은 감독으로서도 김조광수는 많은 남자 스타들의 모종을 심는 역할을 해냈다. <해피엔드>의 주진모, <와니와 준하>의 조승우, <질투는 나의 힘>의 박해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유아인, <후회하지 않아>의 김남길이 모두 김조광수 감독의 혜안에 힘입어 세상에 나온 배우들이다. 김조광수의 두 번째 단편 <친구 사이?>는 <파수꾼>과 <고지전>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이제훈을 발견한 영화이기도 하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다소 수면 아래 숨겨져 있던 배우들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배우와 맡은 역할에 대해 김조광수 감독의 말을 들어봤다.

민수_김동윤 커밍아웃을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동료의사인 효진과 위장결혼하는 민수 역할은 드라마 <동이>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 등에 출연한 배우 김동윤이 맡았다. “여러 배우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TV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 때 동윤씨가 생각나더라고요. 이미지가 아주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연기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이미지인 것 같아요. 민수 캐릭터는 바로 저예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을 내 페르소나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석_송용진 미국의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고 혼자 한국으로 건너와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에서 활동하는 민수의 연인 석은 배우 송용진이 연기한다. 송용진은 <주유소 습격사건> 같은 영화 출연 경력이 있긴 하지만 <헤드윅>과 <셜록 홈즈> 같은 뮤지컬을 통해 더 잘 알려진 뮤지컬계의 스타다. “가장 먼저 염두에 뒀던 배우예요. 이미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석이 역할은 송용진과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시애틀에서 온 시크한 게이니까 로커 이미지인 용진씨와 매우 잘 맞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효진_류현경 민수와 위장결혼한 레즈비언 산부인과 의사 효진은 <방자전> <쩨쩨한 로맨스>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으로 잘 알려진 여배우 류현경이 연기한다. 김조광수 감독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투자가 가능한 스타급 여배우들을 중심으로 섭외하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현경씨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바로 하고 싶다더라고요. 그래서 전작인 <쩨쩨한 로맨스>를 찾아봤는데 역할에 딱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게다가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정말 걱정이 없는 배우예요.”

서영_정애연 류현경의 레즈비언 연인 서영 역할은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배우 정애연이 맡았다. 서영은 머리를 짧게 자른 부치(butch: 중성적인 스타일의 외모나 성격을 가진 레즈비언) 캐릭터로, 효진의 위장결혼에도 불만이 많다. 김조광수 감독은 “남자 같은 부치가 아니라 좀더 보이시하고 예쁜 부치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여고괴담> 시절의 이영진 같은 분위기를 원했어요. 정애연은 그런 이미지로는 너무나 적확한 캐스팅이고, 이미지의 힘이 있어서 영화에도 아주 잘 붙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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