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블록버스터영화 제작 10계명③ - 잘 쓴 조연 하나, 평면적인 주연 백보다 낫다
2012-02-21
글 : 김도훈
블록버스터의 기능적 캐릭터를 이해하라
<해운대>

블록버스터의 캐릭터는 기능적인 로봇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에서 샤이어 라버프와 옵티머스 프라임의 연기는 용호상박이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기름을 피처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과 샤이어 라버프가 폭탄의 위력으로 죽음의 문턱에 떨어지는 장면을 한번 비교해보라. 두 장면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동요에는 큰 차이가 없다. 블록버스터에서 인간 배우와 디지털 배우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그건 기본적으로 블록버스터의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키라 나이틀리가 <캐리비안의 해적>과 <오만과 편견>에서 보여준 연기를 같은 방식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도 이같은 법칙은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아시스>의 설경구와 <해운대>의 설경구, 혹은 <라디오 스타>의 박중훈과 <해운대>의 박중훈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결론이 도출된다. <해운대>에서 두 명석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거대한 기계를 굴리는 일종의 기능적 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에 따라서 영화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문제는 그것이 기능적인 역할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까지 한국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사람들이 블록버스터에서의 기능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강제규의 <마이웨이>와 김지훈의 <7광구>가 공통적으로 빠져든 함정도 거기에 있다. 장동건이 연기하는 <마이웨이>의 김준식은 일종의 로봇에 가깝다. 강제규는 김준식이 변함없는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화 속 김준식에게는 인간이 지녀야 할 어떤 일관적 행동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부당한 일이다. 처음 <마이웨이>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실제 사진 속 독일군 한국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드라마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 한국과 중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노르망디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한 남자가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낀 채 역사를 관통한 기묘한 과정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은가. <7광구>의 하지원이 연기하는 차해준은 더욱 심각하다. <에이리언>의 리플리 같은 여전사 캐릭터 하나를 근사하게 보여주겠다는 욕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감독은 리플리를 여전사 코스튬의 카피 시안처럼 여겼던 것이 틀림없다.

물론 강제규와 김지훈이 마분지 인형 같은 메인 캐릭터들의 단점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안해낸 해결책은? 메인 캐릭터의 단점을 보완해줄 만한 조연을 붙이는 것이다. 확실히 김인권이 연기하는 <마이웨이>의 종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결국 그는 조연일 따름이다. 중요한 건 관객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메인 캐릭터다. 그렇다면 <7광구>의 조연 캐릭터는? 거의 완벽한 실패에 가깝다. 꽤 안정적인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들을 한가득 캐스팅해놓고도 영화는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물론 <7광구>의 배우들이 낯선 그린 스크린 연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얄팍하고 진부한 장르적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하나씩 제거당한다.

다시 처음의 예로 돌아가보자. 옵티머스 프라임을 예로 든 건 마이클 베이의 연출력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이클 베이는 적어도 거대한 로봇이라는 말도 안되는 장르적 존재에게 피처럼 진한 기름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건 어쨌거나 그가 블록버스터에서 캐릭터가 수행해야 할 기능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정도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좋은 기능적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기능을 먼저 이해하고 탐구해야 한다. 아직도 그걸 모르겠다면? 대충 손에 잡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DVD를 한번 꺼내보라. 그 별볼일 없어 보이는 영화 속 조연 캐릭터들이 얼마나 기능적으로 잘 소비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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