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블록버스터야할 필요는 없다
Size does matter. 약 15년 전, <고질라>의 메인 카피는 블록버스터의 본령이 ‘크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질라>이기 때문에 크기가 중요했을 뿐, 모든 블록버스터가 규모에 짓눌릴 필요는 없다. 충무로의 한 프로듀서는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에는 돈을 쏟아부은 것 때문에 그에 걸맞은 생색을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추격자>에서 인물들의 추격전만으로도 땀방울과 긴장감을 만들어낸 나홍진 감독은 <황해>에서 트레일러를 넘어뜨리지 않고도 스펙터클을 넘어서는 쾌감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쓰나미를 극적인 국면으로 활용했던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자신이 제작한 <7광구>에서는 괴물을 왜 그렇게 남용했는지도 의문이다. “규모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스토리”라고 강조했던 강제규 감독이 자신의 말과 상반된 결과물을 내놓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크기를 향한 무리한 야심은 종종 영화적 맥락에서 벗어난 장면을 도출시킨다. 관객의 만족도를 위해 설정된 스펙터클이 오히려 공허해진다. 무엇보다 제작비를 늘린다. 그에 따라 제작비 회수를 위한 마케팅 예산도 늘어난다. 흥행이 지상 최대의 목표여야 할 블록버스터는 더 큰 리스크를 껴안게 된다. 2011년의 블록버스터 가운데 짚어볼 예는 <최종병기 활>이다. 한국 고유의 활이 지닌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뭉친 <최종병기 활>은 활의 속도감과 추격전의 밀도라는 구체적인 과녁을 겨냥한 덕분에 액션의 쾌감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역사적인 맥락과 스펙터클에 대한 야심을 거두면서 생겨난 효과다. 스펙터클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것과 함께 ‘굳이 블록버스터야만 하는가?’란 반문을 제기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7광구>는 괴수영화가 아니라 3D에 방점을 찍으면서 블록버스터가 됐다. <황해>는 계획과 달리 제작비가 늘어나면서 결국 연말 대작영화가 되어야만 했다.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가 되는 순간, 자칫 괴물이 될 수 있는 함정에 빠진다.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할리우드가 아닌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블록버스터와 스타파워가 꼭 함께 가는 건 아니다
티켓 파워가 스타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라면 최근 장동건의 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글로벌 프로젝트였던 <무극>(2004)과 <워리어스 웨이>(2010)는 각각 6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과 38만여명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고, 순제작비가 150억원인 <태풍>(2005)은 450만명을 겨우 넘겼다. 무려 280억원이 투입된 <마이웨이>는 250만명을 미처 채우지 못했다. 하지원은 또 어떤가. 130억원 프로젝트 <7광구>는 224만여명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스타의 출연이 흥행까지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산 블록버스터가 여전히 스타를 찾는 이유는 분명 있다. 스타가 가진 ‘마케팅 파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제작자는 말한다. “<스파이더맨> <배트맨>처럼 영화가 아닌 플랫폼에서 검증된 콘텐츠가 블록버스터로 ‘기획’되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산 블록버스터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지 않고 <고지전>이나 <마이웨이>가 어떤 이야기인지 관객이 알 리가 있나. 관심과 인지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맞다. 스타가 없으면 투자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점에서 확실한 콘텐츠를 기획한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한국산 블록버스터는 당분간 스타 파워에 계속 기댈 것 같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모델은 있다. 2009년 1145만명을 동원해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해운대>를 떠올려보자.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김인권 등 출연진은 당시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들은 아니었지만 저마다 맡은 배역을 잘 소화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쓰나미가 해운대를 덮친다는 자신감있는 기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키운 기획 하나, 열 스타 부럽지 않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