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의 투자 크레딧에는 CJ E&M영화사업본부와 SK텔레콤이 함께 뜬다. 한 영화관계자에 따르면, 쇼박스와 롯데도 투자를 검토했었다. 강제규와 장동건. 전쟁에 휘말려 뜻하지 않게 세계를 일주한 어느 조선인의 실화. 이 3가지 요소만으로도 <마이웨이>는 ‘섹시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도 쇼박스와 롯데는 투자를 주저했고, CJ와 SK는 투자를 결정했다. 쉽게 넘겨짚을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제작비다. 쇼박스와 롯데가 혹시 모를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CJ와 SK는 두렵지 않았던 걸까? <마이웨이>의 투자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들이 있다. 아직 영화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 SK로서는 강제규 감독의 작품을 통해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CJ의 경우는 투자결정 단계에서 “잘되어봐야 500만명”이라는 쪽과 “가능성을 믿고 꼭 밀고 가야만 한다”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밀고 가려고 한 쪽의 사연에 대해서도 두 가지 설이 있다. 만약 <마이웨이>를 다른 회사에서 투자한다면, 2011년 겨울시즌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강제규 감독의 인지도를 통해 아직 성과가 없는 CJ재팬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그런데 여러 소문 가운데,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상업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씨네21>은 지난 830호 특집기사 ‘한국영화 생태계가 흔들린다’를 통해 대기업의 투자검증 시스템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수익성 증대를 위한 시스템이 새롭고 신선한 영화들이 나오지 못하는 토양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이웨이>와 <7광구> 등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블록버스터들은 이 시스템에 의해 수익성을 따지지 않았던 걸까? <마이웨이>와 <7광구>를 비롯해 현재 제작 중이거나, 투자검증 중인 작품들에 대한 충무로 관계자들의 대화에는 검증 시스템과 무관한 이야기들이 들린다. 흥행 타율이 좋은 감독들을 선점하려는 무리한 경쟁이 가져온 결과라거나, 인지도 높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회사의 이름값을 높이려는 기대 때문이었다거나,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대기업 투자담당자들의 과도한 의지라거나. 심지어 오너와의 친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30억, 40억원대의 영화보다도 오히려 100억원대의 대작영화에서 검증 시스템의 데이터를 넘어서는 힘이 작동한다는 얘기다.
“블록버스터의 본질은 절대로 망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프로듀서의 말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대하는 대기업의 맹점을 지적한다. 또 다른 제작자는 “중급 규모의 영화는 흥행성적에 대한 부담이 제일 크지만, 큰 영화일수록 다양한 욕심이 결부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감독, 배우, 제작자, 투자자 등 영화에 크레딧을 건 사람들의 입장이 엮이다 보면, 정작 관객의 만족도처럼 제일 중요한 부분은 놓치게 되는 거다.” 물론 만약 잘된다면 다 좋다. 돈도 벌고, 실적도 늘고, 해외사업에서 인지도도 쌓인다. 하지만 절대 망하지 말아야 할 블록버스터가 ‘만약 잘된다면’이란 막연한 기대로 시작되는 건 합리적일까? 무엇보다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춰놓은 대기업 투자사에서 요행을 바라고 있다는 건 난센스가 아닐까? “너무 겁이 없는 것 같다. 큰 영화일수록 더 안전성을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이웨이>의 제작비가 280억원이 아니라 200억원이었다면 강제규 감독도 이야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도전’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이제는 관객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진짜 패를 한눈에 알아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게 대기업 투자사밖에 없는 구조상, 블록버스터를 대하는 대기업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