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단단한 유리성, 박은태
2012-06-2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Profile

뮤지컬 <엘리자벳>(2012) <피맛골 연가>(2010) <모차르트!>(2010) <햄릿>(2008) <노트르담 드 파리>(2007) <사랑은 비를 타고>(2007) <라이온킹>(2006)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2011)

한달 월급을 뮤지컬 관람에 고스란히 쏟아붓는 지인에게 물었다. 박은태는 어떤 배우냐고. “그가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그밖에 안 보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서야 그 말을 실감했다. 오스트리아의 왕후를 암살한 죄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린 채 재판받는 무정부주의자. 우유가 없어 고통받는 민중에게 우유 목욕을 하는 왕후의 일화를 들려주며 “그녀를 내쫓아”라고 속삭이는 선동가. <엘리자벳>의 루케니는 광기와 매혹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인물이다. 박은태의 루케니는 강렬한 제스처와 폭발적인 고음으로 무대를 완전히 압도한다. 엘리자벳과 그녀를 사랑하는 ‘죽음’이 주인공이지만, 루케니가 수십명의 앙상블에 둘러싸여 <밀크>를 열창하는 그 장면만으로도 박은태는 극의 해설자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어떤 역할로 무대에 서더라도 그 무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2006년 <라이온킹>의 앙상블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박은태가 짧은 시간에 스타의 지위에 오른 원동력일 것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박은태의 강점을 파워풀한 고음의 가창력이라 꼽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평가는 허공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그의 성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박은태의 창법은 왠지 모르게 가요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성악에 가까운 창법을 구사하는 대부분의 뮤지컬 배우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세속의 노래와 닮았기에 그의 목소리는 관객의 마음속으로 더 쉽게, 더 깊이 파고든다. 그 밑바탕에는 ‘가수’라는 실패한 이력의 영향이 있다. “강변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이후 가수로 활동했다. 스물여섯 즈음이었으니 나이도 많고, 노래도 엄청 잘하는 게 아니었고. 소속사 입장에선 내가 가수로서 ‘계륵’ 같은 존재였을 거다. 키우면 잘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확 투자하긴 좀 애매한.” 그 ‘애매함’이 뮤지컬계에서는 장점으로 변했다. 출연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프랑스 제작진은 이력이라고는 <라이온킹>의 앙상블이 전부인 신인배우에게 해설자 역의 그랭구아르를 덜컥 맡겼다. “프랑스 출신의 연출, 음악감독님이 성악 기반이 아닌 새로운 목소리를 찾던 중에 내 목소리를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기회가 오는 건 운이지만, 그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도 실력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 박은태의 행보는 멈춘 적이 없다. 2010년 <모차르트!>의 볼프강 모차르트로 주연의 자리를 꿰찼고 <피맛골 연가>의 김생, <햄릿>의 햄릿으로 서서히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피맛골 연가>로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신인상을, 올해 6월 <엘리자벳>으로 더뮤지컬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박은태는 명실상부한 ‘대세’ 배우가 됐다. “빨리 주인공이 되고, 빨리 인정받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나보낸 그가 최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밸런스’다. “<피맛골 연가> 하면서 양희경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 너무 목숨 걸지 말자는 거다. 배우로서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게 뮤지컬 배우의 가장 큰 덕목인 것 같다. 최선이 중요하지 1등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 순간의 성패에 좌우되지 않는 자들이 프로라면, 박은태는 지금 프로의 마음으로 뮤지컬이라는 장거리 마라톤의 레이스를 뛰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의 ‘프로 정신’은 올 7월10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모차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각별한 까닭?

“<모차르트!>의 볼프강을 연기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전 작품에선 볼프강에 대해 공부하기에 바빴지만, 이번엔 천재의 비애에 대해 보다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통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볼프강에게 악상은 마약 같은 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엔 악상이 떠오르니까. 천진난만한 영혼으로서의 볼프강,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분신인 아마데가 서로 만나는 장면인 <내 운명 피하고 싶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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