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검거나 희거나, 강필석
2012-06-26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Profile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닥터 지바고>(2012) <엣지스> <틱틱붐> <내 마음의 풍금>(2010) <쓰릴미> <김종욱 찾기!>(2009) <나인> <나쁜녀석들> <씨왓아이워너씨>(2008) <쓰릴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2007) <브루클린>(2006) <유린타운> <갓스펠>2005)
연극 <레드>(2011) <레인맨>(2010)

<내 마음의 풍금>에 이어 준비 중인 <번지점프를 하다>까지. 강필석의 필모그래피 중 두편의 원작이 이병헌 출연작이다. “덕분에 뮤지컬계의 이병헌이란 기사가 났더라고요. (웃음)” 이병헌의 장점이야 워낙 많지만, 그는 강필석이 연기하는 ‘인우’를 창조해야 한다. 7월14일 공연까지는 한달도 채 남지 않았고, 인우는 매 장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른 건 생각할 수 없는 연습의 나날들이다. 고되지만 17년 전 사랑을 잊지 못해,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고등학생 소년에게 빠져버린 이 남자의 소용돌이, 그 시공을 초월한 감정의 격랑을 표현하는 건 그에게 도전이자 즐거움이다. “워낙 섬세한 연기예요. 사이즈에 기대갈 수도, 음악에 기대갈 수도 없어요.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고 리얼리티를 살리는 게 관건이죠. 배우로서 힘들지만 그만큼 밀도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어디까지나 겸손이 다분히 섞인 멘트다. 사실 복잡한 인우의 내면을 연기할 배우를 꼽자면 강필석만큼 적절한 캐스팅도 없다. 2004년 조승우와 더블캐스팅된 <지킬 앤 하이드>를 시작으로 그에게 ‘예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안겨준 <갓스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귀도의 내면을 파헤치는 <나인>, 애절한 동성애자로 분한 <쓰릴미>까지 뮤지컬 배우로서 그의 선택은 대부분 어둠과 고뇌에 맞닿아 있었다. “<김종욱 찾기!>를 하기 전까지는 어둡고 생각 많고 예민한 건 죄다 강필석이었죠. ‘강필석이 김종욱을 한다고? 김종욱이 비극이야, 아니면 누굴 죽여?’라고 다들 반응할 정도였으니까요. (웃음)” 물론 강필석의 김종욱은 성공적이었지만, 장르를 오갈 때도 특유의 다크포스는 항상 함께해왔다. “김종욱 중에 가장 진지한 김종욱. <내 마음의 풍금>의 강동수 중에 가장 무거운 강동수였죠. 어두운 사람은 아닌데 제가 말이 느려서 그런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이라는, 배우로서 모범적인 프로필까지 등에 업고 있으니 그가 더 진지해 보이겠지만 사실 그의 배우 지향은 뒤늦게 습득된 일종의 깨우침에 가깝다. “특별히 꿈도 없었고, 대학 입학만이 목표였죠. 연극하던 누나가 연기를 전공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또 안될 건 뭐 있나 싶었는데 다행히 붙었어요.” 이소룡에 미쳐 있었고, 수업시간엔 딴짓 전문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던 그를 일순간 연기밖에 모르게 한 건 배우 로버트 드 니로였다. “우연히 <디어 헌터>를 보게 됐어요. 충격이었죠. 그전까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날 이후 그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좋은 연기자가 목표가 됐고, 삶을 사는 이유가 됐다.

졸업 뒤 뮤지컬계에 발을 들이자마자 강필석은 주연이었다. 덕분에 이후 연이은 오디션 낙방은 시련으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나면 실력을 검증할 길 없는 뮤지컬 분야에서 신인인 그의 입지는 전무했다. “당시(2005년) 오디션장만 가면 함께 맞닥뜨렸던 배우가 <건축학개론>의 조정석이었어요. 서로 눈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늘 둘 다 떨어졌죠. 그때 확고부동하게 주연급이 있었죠. 제발 저 배우 그만 좀 하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아마 조정석도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웃음)” 연습 중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한 연습주의자인 그의 버릇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다. “무식한 스타일이에요. 졸더라도 연습실에 붙어 있죠. 어릴 때 몸이 약해서 태권도를 했는데 하다보니 우승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열심히 하면 1등은 아니더라도 안되는 건 없다고요.” 무더위 연습의 끝, 강필석의 ‘인우’가 기다리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제가 신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딜 가든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다른 장르를 할 수 있지만, 분명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각별한 까닭?

슬럼프가 있었어요. 몇 작품을 몰아 하다보니 캐릭터는 없고, 강필석이 그냥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다 그만두자 했죠. 그때 나를 다잡아준 작품이 <번지점프를 하다>였어요. 데모 음악을 듣는데 그래, 이런 무대를 두고 어딜 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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