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모차르트!>(2010) <로미오 앤 줄리엣>(2009) <햄릿>(2007~2008) <지킬 앤 하이드>(2006) 연극 <엘리자벳>(2012) <거미여인의 키스>(2011)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승대를 보다가 이런 그림이 떠올랐다. 뮤지컬 팬들은 잘 알지만 영화 팬들은 잘 모르는 배우 김승대를 소개하기 위해 ‘배우인생극장 김승대 편’을 찍는다고 치자. 김승대가 직접 주연, 연출을 모두 맡는다. 이내 배우 김승대에게 연출 김승대가 다그치기 시작한다. 맡은 캐릭터에 대해 좀더 열심히 분석하고, 좀더 많이 연습하고, 좀더 창의적으로 표현하라고. 고민과 논쟁과 촬영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그 풍경에서 몇 가지가 포착된다. 하나는 ‘비극’에 매혹된 배우의 모습이고, 다음은 본인을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연출이고, 마지막은 그 창작의 과정을 지속시키는 어떤 비상한 에너지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배운 것도 정극, 좋아하는 것도 정극, 잘할 수 있는 것도 정극”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비극을 주로 선택해왔다. 데뷔작 <지킬 앤 하이드>부터 <햄릿> <로미오 앤 줄리엣> <몬테크리스토>,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현재 출연 중인 <엘리자벳>까지, 이름만 들어도 배우의 어깨에 놓인 짐의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때 그가 기대는 곳은 원작이다. 그는 “고전 비극의 위대함”을 믿으며 “원작에 가까운 연기”를 선호한다. 대학 졸업논문으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를 쓰기도 했다는 그에게 최고의 교과서는 <햄릿>이다. “광기, 슬픔, 분노…. 그는 양면성이라는 말이 충분치 않을 정도로 풍부한 감정을 가진 인물이잖아요. 그런 인물에 끌려요. 도전의식이 생겨요.”
도전을 즐기는 그는 적당주의 불신론자다. 일찍이 <햄릿>에서 레어티스를 맡았을 때부터 그랬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연출가는 이례적으로 ‘월드버전’에서 그를 햄릿으로 승격시켰다. 신인이었지만 그는 “부분탈모가 올 만큼” 자기 속을 지독하게 파서 햄릿을 끄집어냈다. 결과는? ‘승릿’이었다. 승대와 햄릿을 합성한 별호다. 그를 알아보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에게는 알아서 자신을 “혹사시키는” 근육이 붙었다. 그의 첫 연극 도전기도 비슷하다. 남미 최고의 문제작가 중 하나인 마누엘 푸익의 동성애 소설을 원작으로 한 <거미여인의 키스>는 “딱 봐도 엄청 고생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이지나 연출가의 표현대로 “고시생처럼 연습한” 끝에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마초 게이를 만들어냈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는 그에게 그를 아끼는 선배들은 이런 충고도 한다. “너무 제 살 깎아가면서 만들려고 하지 마라.” 하지만 그에게는 브레이크가 없다.
긴장을 늦추지 않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열정’이다. 그가 인터뷰 때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도 ‘뜨거움’이다. “뮤지컬을 하려면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데 마음은 더 뜨겁고 싶다.” 이때 차가움이란 “아무리 격한 감정도 정확한 노래로 표현하기 위해 다스릴 줄 아는 절제력”이다. 때로는 그 냉각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가 뮤지컬에서 얻는 흥분은 크다. 현재 지방 공연 중인 <엘리자벳>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자살을 택하는 ‘승돌프’(루돌프 역-편집자)를 연기하며 “울컥할 때가 많다”고 한다. 또 기회가 된다면 넘치는 에너지를 연극이나 영화에도 쏟아보고 싶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정극에 더 가까운 연극이나 영화에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의 “고향은 물론 뮤지컬”이다. 그의 바람은 그 고향에서 “풍이 와서 팔다리를 못 쓰게 될 때까지 재밌게 노는 것”이다. 그러니 아마 그가 고전 비극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매질하는 건 오래도록 뜨거운 배우로 남아 있기 위해서인 것 같다.
<엘리자벳>이 각별한 까닭?
“가장 감사한 넘버는 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햄릿>의 <시스터>와 <킬러스 네임>이다. 근데 요즘 <엘리자벳>을 하면서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이 나만의 ‘애정’곡이 됐다.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인데, 그럴 수 있는 루돌프가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