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이 물결치네
2012-08-07
정리 : 이주현
배역-통일신라시대, 컴컴한 동굴 속에 사는 석공

TO 배우 이제훈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석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둔 석공. 그는 온몸을 던져 돌을 쪼갠다. 그의 주변엔 이미 그가 조각해놓은 부처의 얼굴이 수천이다. 어두운 석굴 속에서 땀에 젖은 석공의 몸이 번쩍인다. 석공의 몸이 바위에 부딪힌다. 석공의 몸이 튕겨져 나온다. 짧은 신음이 석굴 안에 맴돈다. 문득 젊은 석공은 바위 속에 감춰져 있을 미륵의 미소를 떠올린다. 석공을 둘러싼 수천개의 불상 중 그가 찾는 미소는 없다. 석공의 오른팔은 잘려 있다.

통일신라. 신라 왕의 무덤에 들어갈 불새를 조각해야만 하는 석공은 불새의 흔적을 찾아 신라 서쪽을 여행한다. 그러던 중 석공은 백제 출신의 대도적 아왕을 만난다. 얼굴을 비롯한 몸 전체가 곪아터진 아왕 앞에서 석공은 그만 부지불식간에 불쾌한 마음을 내보이고 만다. 아왕은 석공의 미묘한 행동을 알아채고는 조각칼을 빼앗아 그의 오른팔을 자른다. 석공의 팔이 땅에 떨어지고, 그 손에 꼭 쥐어져 있던 작은 나무 한 토막,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미륵보살 미소를 들고 아왕은 홀연히 사라진다.

우연한 기회로 배우 이제훈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주어졌다. 과거에 학교 워크숍을 통해 만날 기회는 있었지만 함께 작업한 것은 <건축학개론>이 처음이었다. 나는 단무지 잘 먹는 친구였고 그는 그런 내게 핀잔을 주는 역할이었다. 촬영 중이나 이후에 그가 자주 하던 질문이 있었다. 만약 나중에 연출을 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고 싶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작업 중인 위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를 통해 용기내어 고백한다.

그는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석공의 자리로 찾아들어왔다. 상상 속에서 나는 제멋대로 그의 머리를 밀고, 상의를 벗기고, 무례하게도 한쪽 팔을 자른 다음 컴컴한 동굴 속에 던져넣었다. 그의 단단한 몸 전체에 땀이 흐르게 하고, 그 질척한 몸에 돌가루를 뿌려 한바탕 엉겨붙게 만들었다. 마치 태초의 인간처럼 어둠 속에서 돌을 쪼개고 불똥이 튄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돌 쪼개는 소리뿐이지만 불안하면서도 욕망이 느껴지는 눈, 그리고 그 밑으로 곧게 떨어져 이어지는 입술을 상상하면, 말이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충분히 근사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제훈은 굳이 무엇을 하려 하지 않아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가 얼굴에 묻어나는 배우다.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연출, 촬영, 미술,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배우는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 지점에서 이제훈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관객의 감정을 움직인다. 그는 채우기보다는 비우려는 듯하고, 끓어오르기보다는 서서히 얼어붙으려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그가 하루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그가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아직은 손끝에만 머물고 있는 이 인물이 제 주인을 만날 수 있길 기원해본다. 모쪼록 몸 건강히 군복무 잘 마치고 돌아오길.

FROM 감독 조현철

감독 조현철은?

1986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이다. 단편 <두근두근 영춘권>(2011), <영아>(2012)에 출연했다. <건축학개론>에 납뜩이 역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결국 이제훈의 대학친구 동구 역을 맡게 됐다. 단편 <척추측만>(2010)을 연출했다. 현재 졸업작품을 준비 중이며, 이제까지 좋아했던 영화와 만화를 모두 끌어다 만들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출연작, 연출작 모두 합해 100편 정도 찍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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