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design+] 동네 카페의 사운드스케이프
2012-10-19
글 :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커플즈>

그녀가 사라진 지 한달이 지났다. 큰 집에서 현모양처로 사는 게 꿈이라던 그녀. 유석(김주혁)은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대출을 받아 집까지 새로 장만한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문자 한통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 유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출근해, 창가에 앉아 아이패드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다. 오전 11시 반, 아직 손님이 드문 시간대라 카페 안의 분위기는 고즈넉하다.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안성맞춤인 시간.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30대 아줌마들이 이 정적을 깨고 카페에 등장해 간단히 주문을 마친 뒤, 수다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분위기,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에 성호 엄마가 우리 집에 잠깐 놀러왔었거든. 그런데 새로 이사 간 동네 분위기가 장난 아니래.” “남편 직장 때문에 그쪽으로 간 거잖아. 여기 아파트 전세 내주고, 곧 다시 돌아온다며 갔잖아.” “응, 그런데 성호를 거기 유치원엘 보냈는데, 글쎄 그 유치원 엄마들이 세파로 갈려 있다지 뭐야, 거기 짱 먹은 엄마들이 따로따로 불러내, ‘자가냐, 전세냐’부터 이것저것 호구 조사를 하더래. 성호 엄마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묻는 말에 다소곳이 답하면서 혼자 속으로 이랬대잖아, ‘네가 니들 아파트값 얼마인지 다 아는데, 감히 나님을 불러다가 면접을 봐.’” “하여간 어정쩡한 것들이 더하다니까. 근데 성호 엄마 정도면 그 동네 아줌마들 순식간에 휘어잡을 텐데, 가만히 있었나 보네?” “연초에 점쟁이가 오지랖과 자존심을 버리라고 했대.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이사 왔고 지금 집은 전세라니까, 갑자기 짠한 표정을 짓더라네. ‘망한 중산층, 여기 하나 추가요’ 뭐 그런 얼굴 표정이었다나. 그래서 거기선 그냥 ‘몰락한 중산층’으로 연기하면서 고분고분 살기로 했대.” “호호호.” “요즘 동욱 엄마 봤어? 그 엄마, 맞벌이하잖아. 근데 얼굴 보니까 불과 몇달 사이에 살이 많이 부어올라 있더라구. 그래서 임신한 줄 알고 물었더니,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대. 집에서 쉬지 그러냐니까, 그래도 일은 해야 한대.” “하여간 어딜 가나 그런 독종들이 꼭 있어요. 교회도 안 다니잖아.”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나 보네.” “용훈이 엄마 이야긴 들었어? 그 집 전세잖아. 이번에 주인이 5천만원 더 올려달라고 했다네, 모아둔 돈은 없고 어쩌겠어, 시댁에 도움을 청했더니, 글쎄 용인으로 들어오라고 했대, 시댁 아파트가 70평이라나.” “그 집도 참 이해가 안된다니까. 용훈이 엄마도 여기 산 지 10년 됐잖아. 결혼하면서부터 여기 전세로 살았으니까.” “그 돈도 시어머니가 해줬다잖아.” “그러니까 말야. 여기 전셋값이면 그때 변두리 아파트 한채 사서 거기로 들어갔어야지. 지금 서울 시세면 못해도 종잣돈 두배로 불렸겠네.” “그렇지. 아무튼 눈만 높아가지구. 이 동네에서 전세로 신혼집 마련했던 모양인데, 평생 전세 신세 못 면하게 생겼어.” “호호호, 뒤늦게 용인 들어가서 시집살이 시작하든지.” “그런데 우리 유치원 원장이 빌딩 부자인 건 알아?”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유석은 그저 무섭다는 생각뿐이다. 그녀가 말하던 현모양처의 삶도 저런 것이었을까? 그는 지금, 그게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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