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 4월25일 개봉한 <아이언맨3>가 개봉 6일 만에 32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박스오피스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 한두해 동안 외화 성적이 부진했지만 올여름은 다를 것 같다. 먼저 5월30일 같은 날 개봉하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애프터 어스>와 J. 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시작으로, 6월에 찾아올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과 마크 포스터의 <월드워Z>에 이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7월)과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8월)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감독들의 면면이 참신하고, 공통적으로 SF영화라는 점에서 이 리스트는 뭔가 특별하다. 지난 몇년간 오직 슈퍼히어로들의 격전장이었던 서머 시즌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당신은 어떤 영화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SF 블록버스터 기상도
맑음 흐림 비 천둥/번개
올여름 극장가에선 어떤 작품이 햇살을, 어떤 작품이 소나기를 맞게 될까. 이어지는 페이지에서는 올여름 극장가에서 맞붙을 SF 대작 작품별 예상 기상도를 함께 소개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나같이 SF다(혹은 엄밀하게 말해 그에 가깝다). <인디아나 존스>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그리고 <미이라>나 <진주만> 같은 영화를 본 지도 한참 된 것 같다. 어쩌면 앞서 개봉한, 그러니까 외계인의 침공이 있었던 지구 최후의 날 이후를 그린 <오블리비언>을 전조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싸우던 지구의 마지막 정찰병 잭 하퍼(톰 크루즈)의 경우처럼 여기에는 혹시 어떤 음모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올여름 우리를 찾아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슈퍼히어로물의 리부트 <맨 오브 스틸>을 포함해, 하나같이 황량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종말론의 블록버스터 혹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모든 것을 9.11 테러 혹은 이라크전의 트라우마와 연결짓던 분위기의 또 다른 변형일까. 왜 할리우드는 갑자기 현실의 시공간을 간절히 탈출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그 자체의 리부트인 걸까.
지구를 지켜라
먼저 지구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애프터 어스>는 무려 3072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사 사이퍼 레이지(윌 스미스)와 아들 키타이 레이지(제이든 스미스)는 그들이 불시착한 낯선 행성이 바로, 오래전 대재앙 이후 모든 인류가 떠나고 황폐해진 지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버려진 지구를 정복한 생명체들은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진화해 그들을 공격한다. 외계괴물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에도 등장한다. <애프터 어스>보다 가까운 2025년을 배경으로 한 <퍼시픽 림>은 지구를 파괴하는 외계괴물 ‘카이주’와 맞서 싸우는 지구연합군인 범태평양연합방어군의 거대로봇 ‘예거’의 대결을 그린다. <디스트릭트9>(2009)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 또한 2154년을 배경으로, 호화로운 우주 정거장 ‘엘리시움’에 사는 코디네이터스 계급과 황폐해진 지구에 사는 하층민들의 갈등을 그린다. 이들 작품은 미래사회의 새로운 환경과 캐릭터들에 부여된 새로운 용어들을 반드시 숙지하고 극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각각 ‘플랜B’와 ‘에이피언 웨이’라는 자신의 제작사를 거느린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치열한 판권 전쟁까지 벌인 <월드워Z> 또한 종말의 풍경을 그린다. 세계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정체불명 좀비들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진 않지만, 그것은 인류 최후의 대재난에 가깝다.
올여름 개봉작 중 기존 시리즈도 눈에 띈다. 방대한 <스타트렉> TV시리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트레키’의 마음으로 <스타트렉>은 물론 슈퍼히어로물의 원조쯤 되는 과거 <슈퍼맨> 시리즈를 예습하는 것도 필요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와 <엑스맨> 시리즈의 브라이언 싱어가 각각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과 <잭 더 자이언트 킬러>로 한눈파는 사이, J. J. 에이브럼스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을 3D로 업그레이드한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메가폰을 잡았고 잭 스나이더가 <왓치맨>(2009), <써커펀치>(2011)에 이어 <슈퍼맨> 시리즈의 리부트인 <맨 오브 스틸>로 돌아온다. <맨 오브 스틸>은 <배트맨> 시리즈의 혁신가이기도 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J. J. 에이브럼스는 1편과 2편 사이에서 <슈퍼 에이트>(2011) 등 언제나 만족스런 결과물을 내놓은 모범생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잭 스나이더는 굳이 <300>(2007)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비주얼’에 관한 한 남다른 솜씨를 선보여온 감독이기에 새롭게 슈퍼맨을 연기할 헨리 카빌과 함께 관심의 초점이다.
우주로 날아간 카메라
그 어떤 영화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짐작할 수는 없지만, 올여름에 만나게 될 블록버스터들은 하나같이 전 지구적 혹은 전 우주적 규모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맨 오브 스틸>이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했던 과거 시리즈는 물론 바로 전 시리즈인 <수퍼맨 리턴즈>(2006)도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도시를 무대로 슈퍼맨이 활동했고, 그 슈퍼맨의 출생의 비밀을 이용하려는 악당이자 ‘개인’인 렉스 루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서는 낯선 외계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하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규모로 진행된다. 렉스 루터라는 선명한 악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넘나드는 가운데 악당을 ‘색출’해야 하는 것.
애초부터 머나먼 우주를 무대로 삼은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애프터 어스> <엘리시움> <퍼시픽 림> <월드워Z>의 위태로운 지구 또한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고담시를 비롯해 <아이언맨>이나 <엑스맨> 시리즈의 위협받는 도시 수준을 넘어선다. 심지어 <애프터 어스>와 <엘리시움>에서는 지구의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9.11 테러의 영화적 여파로 인식되던 그런 도시 붕괴와 통제의 드라마는 사실상 <트랜스포머3>(2011)와 <어벤져스>(2012)가 각각 시카고와 뉴욕을 처참하리만치 붕괴시키며 어떤 매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현재의 도시 이야기인 <월드워Z> 또한 전세계를 무대로 화려한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그렇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소화하는 대중의 관심 또한 우주로 향한 게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최근의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과 겹쳐, 더이상 ‘도심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걸 꺼려하게 된 집단적 무의식이랄까.
이같은 현재의 분위기를 낳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앞서 말했듯 각종 메커닉 대결의 결정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슈퍼히어로들의 종합선물세트인 <어벤져스>를 거치며 더이상 도심에서의 스펙터클을 시도하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게 된 이유도 크다. 이제 배경을 도시로 한정하는 순간 볼거리의 상상력은 물론 이야기의 상상력 또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어쨌건 각 영화들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카메라가 우주로 간 것은 꽤 신나고 근사한 일이다. 복고보다 SF의 상상력을 꾸게 된 할리우드의 희망적 징후가 아닐까, 라고 괜히 넘겨짚고 싶어진다. 이들은 과연 블록버스터의 멋진 신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