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글로벌 영웅과 좀비의 탄생
2013-05-14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월드워Z> World War Z
제작 마크 포스터 / 배우 브래드 피트, 미레일 에노스, 매튜 폭스, 제임스 뱃지 데일 / 수입,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예정 6월

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에 맞먹는 세계대전 ‘Z’가 온다. 조류독감보다 끈질기고 신종플루보다 기습적인 좀비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확산이다. 무자비한 자연의 심판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 미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우왕좌왕 도피 행렬 속에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과 그의 가족도 가세한다. 하지만 평범한 가장인 동시에 유엔 소속 위기관리 전문가인 제리 레인은 선상 대피소에 아내와 두딸을 맡겨둔 뒤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한다. 좀비들의 쓰나미로부터 지구를 건져내야만 가족도 살릴 수 있음을 알아서다. 인류 생존의 열쇠, ‘페이션트 제로’(첫 번째 환자)를 찾아 그는 폐허가 된 세계 각지를 떠돈다. ‘글로벌’ 시대의 부름을 받은 영웅과 좀비의 환생이 예견된다.

리뉴얼 지수 – 맑음

무릇 좀비란, 지난 수십년간 이름난 B무비 작가들의 손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종이다. 그런 좀비에게 어떤 변신의 여지가 남아 있을까. 의외의 묘책은 동물의 세계에 있었다. “원작은 좀비의 느린 점에 주목했다. 우린 과학에 기초해 더 역동적인 좀비를 택했다. 그러니까 만약 그들이 개미들처럼 움직이면 어떨까? 혹은 벌떼라면?” 브래드 피트의 귀띔대로 <월드워Z>의 좀비들은 수천명 이상 떼로 포식활동을 벌이며 스크린까지 게걸스레 삼켜버릴 심산이다. 이 ‘쓰나미’ 효과를 제대로 담기 위해 제작진은 매일 1천명이 넘는 엑스트라와 씨름해야 했다. 촬영도 일개 좀비의 클로즈업보다 좀비떼의 살벌한 ‘군무’를 뒤쫓는 롱숏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덤으로 3D 변환 버전에서는 관객을 향해 돌진하는 좀비까지 만날 수 있다니, 신선한 좀비떼로 요리한 최후의 만찬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인류에 대한 통찰력 지수 - 맑음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좀비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유서 깊은 액션 오락영화 시리즈에 진중한 표정을 덧입힌 <007 퀀텀 오브 솔러스>로 대중과 평단의 환심을 산 바 있는 마크 포스터는 <월드워Z>를 좀비영화보다 “글로벌 영화”로 풀이했다. 살육의 스펙터클을 앞세우기보다 전 지구적 동경을 성찰하는 원작의 정신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는 뜻이다. 좀비 쓰나미에 관해서도 그는 “1970년대 조지 로메로 작품들 속 좀비들이 소비제일주의에 관한 훌륭한 은유였다면 내겐 그 은유가 오늘날 인구과잉과 물자부족 현상에 대한 것”이라 설명했다.

각색 잘했을까 지수 – 천둥/번개

브래드 피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치열한 경쟁 끝에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영화로 향하는 배에는 불행히도 사공이 너무 많았다. 관건은, 사후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된 저 건조한 르포르타주 소설을 어떻게 현재진행형의 좀비/정치/액션/오락영화로 번안할 것인가였다. 첫 주자, <토르: 천둥의 신>의 J. 마이클 스트랙진스키는 ‘본’ 시리즈처럼 전세계를 무대로 한 어두운 액션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와 마크 포스터는 세계 정치의 이면을 파고드는 “트로이목마”로서의 좀비영화를 견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매튜 마이클 카나한의 수정본으로 촬영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결말부가 2% 부족했다. 제작진은 부다페스트 로케이션 촬영분을 ‘통’편집할 각오 끝에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먼 린델로프와 <캐빈 인 더 우즈>의 드루 고다드에 최종 리모델링을 맡겼다. 소설과 다른 결말의 영화는, 3부작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제리 레인의 영웅적 면모와 대규모 액션 신의 파토스를 강화했다는 후문이다. 부디 영화가 산으로 가는 일은 없기를.

시리즈화 지수 – 비

그의 잘못은 없다. 팔방미인형 배우가 된 지 오래인 그의 신작 앞에서 ‘당연히 잘하겠지’라며 게으르게 반응하는 우리가 문제라면 문제다. <번 애프터 리딩>의 모자란 피트니스센터 직원부터 <머니볼>의 CEO형 구단장까지, <트리 오브 라이프>의 근엄한 아버지부터 <킬링 소프틀리>의 냉소적인 킬러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미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미국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적 영웅 제리 레인도 그 사이 어딘가에 무난히 안착할 것이다. 굳이 궁금한 점이라면 그가 제이슨 본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한 액션 영웅이 될지, <월드워Z>가 브래드 피트의 야심대로 본격 프랜차이즈로 확장될지 정도랄까. 연기력에 관해서라면 브래드 피트 하나가 <컨테이젼>의 열 배우 안 부러울 건 이미 너무 빤하다.

제작비 회수 가능성 지수 – 흐림

더이상의 좀비영화는 없을 것, 이라고 선언만 안 했지, 영화 사상 가장 비싼 좀비영화의 탄생이다. 만년 B무비의 단골손님이었던 좀비들이 21세기 들어 할리우드 메인 스트림으로 흘러들더니 급기야 블록버스터의 중간대륙을 점령한 형국이다. <월드워Z>의 경우 애초에 책정된 예산만 1억2500만달러였다. 10페이지마다 배경 도시를 바꾸어가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원작을 따라 영국, 몰타, 스코틀랜드, 헝가리에서 대대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으니 그 정도의 출혈은 필수였을 것이다. 좀비영화 사상 최초로 비행기 격추 신에도 도전한다. 그나마도 각본 수정과 5주간의 보충 촬영에 따라 제작비가 1억7천만달러로 치솟았음을 감안한다면, 세계 시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만 3부작의 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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