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이번에도 하늘에 뭔가 떠 있고 지구는 그저 버려진 땅처럼 황량하다. 놀라운 장편 데뷔작 <디스트릭트9>(2009)을 들고 나타났던 닐 블롬캠프는 변함없이 ‘불법이민자’와 ‘도시빈민’, 더 나아가 ‘계급’이라는 테마로 다시 한번 SF장르를 다룬다. 그와 같은 이분법은 그의 2005년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에서부터 다뤄졌다. 닐 블롬캠프의 영화는 여전히 같은 세계의 미세한 변주다.
2154년, 엘리시움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맥스(맷 데이먼)는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방사능에 감염되고, 불과 5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기 위해서는 엘리시움에 있는 치료기계를 이용해야 한다. 결국 불법으로 엘리시움과 지구를 오가는 비밀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범죄에 가담하기로 한다. 한편, 엘리시움의 정부 관료 델라코트(조디 포스터)는 그를 막기 위해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로 하여금 공격하게 한다.
마치 <디스트릭트9>에서 시간이 더 흐른 듯한 <엘리시움>에서 세상의 불균형은 더욱 확산됐고, 빈부격차 또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SF장르의 미래세계가 결국 현실의 반영이라는 얘기는 닐 블롬캠프가 줄곧 천착해온 화두다. 아니, 그의 영화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루는 테마가 명쾌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우주선과 외계인, 그리고 로봇경찰과 각종 신무기라는 선명한 이미지만 제외하면 영화 속 배경이 아무리 2154년이라도 마치 지금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엘리시움 실제 촬영지가 캐나다 밴쿠버, 황폐한 지구 촬영지가 멕시코시티 빈민가라는 로케이션의 양극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기보다 그냥 현실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사회를 이루는 시각적 재료나 아이디어가 풍부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흐름으로 보자면 ‘판도라의 상자’나 ‘트로이의 목마’급의 소품이나 세트여야 할 텐데, 단 한번의 짧은 스캐닝만으로 그 어떤 질병도 고치는 치료기계의 비주얼과 설정은 너무 밋밋하다. 반면 로봇경찰과 감시로봇, 비행정 등 ‘액션’을 위한 신무기들에는 꽤 세심한 공을 들였다. 그러니까 <엘리시움>은 닐 블롬캠프의 영화들 중 가장 강도 높은 액션드라마로 완성됐다. 맥스와 크루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사실상의 핵심이랄 수 있다. <디스트릭트9>의 연장선이되 선뜻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없는 장점과 단점이 거기에 공존한다. 닐 블롬캠프가 채 서른살도 되기 전에 <디스트릭트9>을 만들었을 때 그 뒤에는 제작자 피터 잭슨이 있었다. 그의 완전한 독립선언은 그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