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상처와 상실, 그 이후 <브로큰 서클>
2013-10-30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사랑의 흔적을 몸에 새겨왔던 타투이스트 엘리제와 타인의 인생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보헤미안적인 뮤지션 디디에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음악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어린 딸 메이벨이 있어 진정 인생 최고의 나날들이었다.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암으로 오래 앓던 딸이 세상을 떠나자 둘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입장은 소통을 가로막는다. 남자는 냉소적 무신론자이고 여자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믿는다.

<브로큰 서클>은 상처받거나 깊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후일담을 보여주는 영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고통을 뒤섞었다. 벨기에의 주목받는 신예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의 네 번째 장편영화로 디디에 역의 요한 헬덴베르그는 영화와 그 원작 연극의 각본을 직접 썼으며 엘리제 역의 벨 배턴스 역시 연기자이자 뮤지컬 및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들의 연기가 깊은 각인을 남긴다. 디디에가 연주하는 블루그래스는 미국 서부음악 장르 중 하나로 바이올린, 베이스, 만돌린, 기타, 밴조를 기반으로 한 세속적이면서도 애수 어린 어쿠스틱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본래 굶주림과 삶의 비참함을 잊기 위한 블루그래스 노래가사들이 마치 엘리제와 디디에 커플이 겪는 은총과 비애인 양 절절히 그들의 인생에 스며들어 오래 잔향을 남긴다.

아이가 작은 새의 죽음을 받아들이듯 무신론자 디디에는 상실의 경험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를 배우게 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중에 이미 사라진 별의 잔광이 있듯 존재는 사라져도 흔적은 남아 아마 우주가 무한하다면 영원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메이벨 그리고 그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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