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감독과 배우들의 불화가 심각했다고?
2014-01-14
글 : 이주현
압델라티프 케시시 vs 레아 세이두/아델 엑사르코풀로스/스탭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공개한 뒤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영화에 쏟아진 찬사와는 별개로, 영화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는 케시시 감독의 노동력 착취와 독단적 스타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원작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레즈비언의 섹스 신’이 비현실적이라며 감독의 연출에 딴죽을 걸었다. 케시시 감독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러한 논쟁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네마를, 관객을, 영화 만드는 사람을 그리고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심사위원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정리해봤다.

노동력 착취가 있었다?

“촬영 과정은 착취에 가까웠다.” “주중, 주말 관계없이 일해야 했다.” “하루 8시간 근무로 계약했으나 실제 근무시간은 16시간이었다.”

2013년 5월23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프리미어 상영이 있은 직후, 프랑스 영화노조 Spiac-CGT는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촬영 기간 내내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뒤 영화에 참여했던 스탭들의 증언과 시위가 영화제 기간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스탭들은 추가노동에 대한 임금 미지불과 불공정한 처우, 감독의 비인간적 대우를 비판했다. “무질서한 촬영 스케줄”에 대한 토로도 토로지만, 케시시 감독의 “정신적 괴롭힘”과 “약자를 괴롭히는 분위기” 때문에 중간에 일을 그만둔 스탭들이 있었다는 증언은 감독의 명성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왜 하필 칸영화제 기간에 성명서를 냈을까. 프랑스 영화노조 Spiac-CGT의 행동은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Spiac-CGT는 2012년 1월, 독립영화사협회 API와 새로운 단체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촬영현장에선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제작사인 와일드 번치 역시 스탭들의 최저임금 등 협약의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영화제 기간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Spiac-CGT는 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제작사들에 압박을 가할 수 있었고, 영화 스탭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이슈몰이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동성결혼 합법화 이슈의 득을 봤다?

“이 영화는 현실 참여적이거나 투쟁적인 작품이 아니지만, 프랑스의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과 맞물린 시기에 황금종려상을 탔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우연이다.” _아델 엑사르코풀로스

“두 여자의 사랑을 얘기하는 데 이상할 게 전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이런 좋은 우연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우연이라면 말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탄 것은 지금 이 순간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변화가 자연스러운 방향이기에 생겨난 일이다.” _레아 세이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3년 5월26일. 파리의 앵발리드 광장에선 동성결혼 허용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앞서 4월23일, 프랑스 의회는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법안 이름은 ‘모두를 위한 결혼법’. 이로써 프랑스는 유럽에서 9번째, 전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 커플의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법안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시위를 계속했고, 2013년 1월에는 시위에 나선 법안 반대파와 경찰의 무력 충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편의 문제적 퀴어영화,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과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호수의 이방인>은 퀴어종려상을 수상했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수상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이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6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뻐하며 두 배우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볼에 키스하고 있다.

원작자가 영화를 싫어한다?

“이른바 ‘레즈비언 섹스’를 묘사한 장면에서 가혹하다는 느낌, 수술대 위에 전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섹스 신은 동성애자들에겐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이성애자 남성의 레즈비언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시선으로 섹스 신을 묘사했다.” _쥘리 마로

“칸영화제 이전에 쥘리 마로에게 영화를 보여주었고, 그녀는 이메일을 통해 영화가 무척 좋았다고,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전해왔다. 그런 그녀가 영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녀만이 레즈비언의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위험하다. ‘남성의 시선’ 같은 주장은 말도 안 된다.” _압델라티프 케시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작자인 쥘리 마로는 영화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평을 지난해 5월2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케시시와의 만남과 영화에 대한 기대치 등을 언급한 뒤 쥘리 마로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명의 레즈비언으로서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글로 남겼다. ‘영화에서 묘사된 섹스 신은 진짜 레즈비언 섹스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요지였다. 이에 케시시는 “작가의 주장은 비논리적”이라며 흥분된 반응을 내놓았다. “이것이 황금종려상을 탄 뒤에 치러야만 하는 대가인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한 영화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순간 모두 조금씩 그 빛을 끌어당겨 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 유감스럽게도 쥘리 마로의 경우도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원작자의 비판을 레아 세이두는 이렇게 정리했다. “책은 쥘리 마로의 것이지만 이것은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영화다.”

감독과 배우의 불화가 심각했다?

“압델라티프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그에겐 자신의 관점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현재 감독과 대화는 하지만 그가 나를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 _레아 세이두

“이 논쟁은 거짓말과 천박함에 기초해 있다. 주목받고 싶어서 하는 소리다. 배우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주목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레아 세이두도 이 영화를 찍으며 성장했다. 지금은 그것을 보지 못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다. 슬픈 일은, 그녀의 발언이 (영화를 위해 들였던) 수년간의 힘든 노력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_압델라티프 케시시

“지금 이 논쟁은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가 ‘데일리비스트’와 인터뷰할 때는 이런 반향을 불러올지 몰랐다. 우리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기사화했다. 레아와 나는 무척 친하고, 촬영 내내 서로 많이 의지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 촬영 당시의 기억을 꺼냈던 것뿐이다. ‘그때 그가 엄청 화냈었지~’, 그렇게 웃으며 당시를 회상한 거였다.” “나는 두 사람(압델라티프 케시시와 레아 세이두)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아니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하고, 다시 찍어야 한다면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_아델 엑사르코풀로스

2013년 9월, ‘데일리비스트’와의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인터뷰에서 레아 세이두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는 “감독의 요구사항은 상식을 넘어섰다”, “촬영은 심리적 고문에 가까웠다”, “촬영 과정이 끔찍했다”라고 말했고, 이 얘기는 그대로 기사화됐다. 아델 엑사르코풀로스는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 ‘데일리비스트’ 기자가 정황을 따지지 않고 기사를 써 자신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끔찍했다”, “그와 다시는 작업하지 않겠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레아 세이두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사이는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졌다. 레아 세이두는 굳이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고, 언론은 레아 세이두와 감독과의 불화설을 부추겼다. 지난해 12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루이 델뤽상을 수상했을 때도 케시시 감독과 아델 엑사르코풀로스 두 사람만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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