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usic-樂士必然獨居論(악사필연독거론)
2014-02-04
글 : 박성도 (뮤지션)
악사필연독거론… 음악과 싱글 라이프의 부인할 수 없는 연관성을 노래하고 듣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눈썹과 이마 사이 어디엔가 아른거린다 싶으면,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계셨다. 그런가 하면 한참 고민 끝에 얻어진 멜로디에 ‘이건 영국 모던록의 멜로디처럼 훌륭하군!’ 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 방문 밖에서 <6시 내 고향> 오프닝뮤직이 들려와, 나의 감정을 전남 구례로 안내했다. 드디어 30대가 되고, 20대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보.증.금.이라는 것을 손에 넣게 되자, 나는 바로 집을 나왔다.

악상은 밤 12시 전에 찾아오는 법이 없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창문 밑에 숨어 기회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창문을 넘어 집으로 들어올지 말지 망설이며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를 집에 들어오게 하려면, 조명은 최대한 어둡게 하고, 혼.자.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늦은 밤, 그렇게 내 방에 들어온 고양이가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면서 나의 노래도 한곡, 두곡 늘어나 나는 지금껏 뮤지션으로서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혼자 사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구나 싶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혼자 사는 것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공감은 깊어져 근처 고깃집에 가서 1300만원어치 고기를 먹고, 300만원을 에누리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럼 우리 함께 모여 살까?”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대부분 “그냥 혼자 살래”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친구들에게도 밤마다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는 모양이다.

설이다. 나는 지난해와 다름없이,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으러 상도동 부모님 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가 바쁘게 나의 고양이가 있는 합정동 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위에 소개할 노래들을 들으며,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냉장고에 넣고 있을 것이다. 모두 혼자 사는 것에 닿아 있는 노래들이다. 점쟁이가 해주는 멋진 해몽처럼, 플레이 리스트의 노래들을 듣다보면, 나의 싱글라이프는 꽤 그럴듯하다.

솔로를 위한 플레이 리스트 5

<Something So Right> 폴 사이먼
폴 사이먼 버전의 <가시나무>(시인과 촌장). 멋진 사람치고 쉬운 사람 없는 법. 나에겐 만리장성만큼 큰 벽이 있어, 쉽지는 않을 거야.

<Flume> 본 아이버
무명 밴드의 커리어가 파국에 이르고, 병마까지 겹쳐 철저하고 처절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 병상에서 구상한 노래들로, 결국 그는 세계적 뮤지션이 되었다. 그래도 아프진 말자.

<Love is a Bourgeois Construct> 펫숍보이스
혼자 사는 데 적당한 허세는 뽕브라나 키높이깔창과 같은 것이다.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 따위, 다 부르주아를 위한 거야’라고 가볍게 받아쳐줄 수 있다(아쉽게도 노래 후반부에 가면 허세임이 드러나지만).

<All I Want For Christmas Is New Year’s Day> 허츠
영국:한국=크리스마스:설… 정도가 아닐까? 혼자 맞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최고의 캐럴이다. 설을 맞이하는 독거 한국인들에게도 적절한 기쁨과 씁쓸함을~.

<Great Indoor> 존 메이어
은둔형 외톨이는 혼자 사는 것의 파국을 의미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들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