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티븐 소더버그의 여섯 공범들 [6] - 맷 데이먼
2002-02-22
글 : 김혜리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어딘가 비어 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라이너스 캘드웰

앤서니 밍겔라의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은 모든 것을 따라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청년 리플리를 연기한다. 재즈 음반을 들으면 피아노 연주를 따라할 수 있고, 말투와 동작을 따라하는 것은 물론 사인까지 똑같이 베낄 수 있고, 마침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리플리. 재능이 많고 따뜻한 청년 리플리는 그러나, 그의 우상을 죽여버린다.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을 뻔뻔스럽게 리플리의 앞에 증명해보이던, 그의 사랑을. 리플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맷 데이먼을 보고 있으면, 조금 우울해진다. 거친 바람이 부는 겨울의 시카고, 그곳에서 만난 라이너스 캘드웰은 역시 ‘도둑’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방법 역시 소매치기다. 검은 테의 안경을 끼고, 야구 모자에 배낭. 누가 봐도 순진한 대학 1년생의 외양을 하고서 캘드웰은 전철 승객의 지갑을 훔친다, 아버지처럼. 오션스 일레븐에 합류한 뒤, 캘드웰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시도의 이면에는, 캘드웰 아니 맷 데이먼의 내부에는 거대한 ‘결락’이 있다. 무엇인가가 비어 있는,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는 너른 황야가.

줄리아 로버츠의 <미스틱 피자>에 단역으로 나왔던 맷 데이먼은 <커리지 언더 파이어> <레인메이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출세작은 <굿 윌 헌팅>.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영화 동지였던 벤 애플렉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은 <굿 윌 헌팅>은 묘한 영화였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빈민가의 청년. 대학에서 청소부일을 하며 수학과에서 학생들에게 낸 숙제를 단번에 풀어낸 비범한 아이. 착한 ‘윌 헌팅’은 그러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신의 재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가 자라난 황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락과 명예와 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어둠을 보고 있다. 비어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결코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지 못했던 리플리와 마찬가지로.

<라운더스>에서 아무리 계산적으로 도박을 한다 해도, 맷 데이먼에게서는 ‘차가운 피’가 연상되지 않는다. 피곤한 얼굴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건 인간 쓰레기인 친구이건 마찬가지다. 그는 성실하게 배우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간다. 분명히 모범생이지만 ‘윌 헌팅’은 인생을 알고 있다. 좋은 스승, 아버지만 만난다면 그는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맷 데이먼은 이 세상이 쓸쓸하고 고된 항해이지만, 여전히 몸을 녹일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배우다. 캘드웰이 ‘오션’과 만나, 돈도 얻고, 인생의 즐거움과 따뜻함까지 얻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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