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 일레븐>의 제1막은 제목에 나오는 열한명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리크루트’에 힘쓰는 대니 오션과 러스티 라이언의 고군분투- 라기에는 너무 일사천리로 성사되지만- 로 채워진다. 둘의 스카우트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대목의 한 장면. 대니와 러스티는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이 흘러나오는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대니가 묻는다. “이제 열명이야. 그만하면 되겠지?”(러스티, 팔을 베고 TV를 보며 묵묵부답) “한명 더 필요하다는 거야?”(계속 딴청) “필요하다는 말이군.”(들은 체 만 체) “좋아, 한 사람 더 구하지.” 산뜻한 삽입구와 같은 이 장면은 러스티의 캐릭터를 함축하는 동시에 스타 브래드 피트의 한 면모를 설명한다. 타고난 ‘어린아이스러움’에서 비롯된 희미한 응석이 어린 강력한 설득력, 그리고 강아지 같은 눈동자 뒤에서 톱니바퀴처럼 째깍째깍 작동하는 회색 뇌세포.
조지 클루니가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양질의 프로젝트들을 진지처럼 이용하는 배우라면 브래드 피트는 재능을 입증하기 위해 유랑 복서처럼 도전을 찾아 헤매왔다. 데뷔 이래 브래드 피트는 ‘남성판 마릴린 먼로’라는 별칭에 수긍이 갈 만큼 미남스타가 할 법 하지 않은 작은 역, 망가지는 역, 고된 역을 즐겨 골랐고, 로버트 레드퍼드, 해리슨 포드, 모건 프리먼 등 선배 배우들의 옆자리에서 2인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시도 전부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체험 아니 인생에 대한 브래드 피트의 사춘기 사내아이 같은 식욕은 다스려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수영부부터 학생회까지 온갖 활동에 발을 담갔다가, 끝내는 졸업을 2학점 남기고 “내 머릿속에서는 학창 시절이 다 끝났다”며 주머니에 325달러(이것은 동일한 상황에서 청년 조지 클루니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보다 25달러가 많은 액수다)를 넣고 할리우드로 대책없이 차를 몰았던 16년 전 일을 생각하면 최소한 일관성 있는 삶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할리우드 풋내기 영화배우들에게 카드를 가르치며 하품나는 나날을 보내는 러스티 라이언의 권태로운 표정은 늘 도전에 갈증을 내는 브래드 피트와 썩 잘 어울린다. 지난해 피트의 야심은 난해한 대사 구사에 집중됐던 모양이다. <멕시칸>에서 미국식 스페인어로 관객을 경악시킨 그는 <스파이 게임>에서는 독일어를, <스내치>에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방언을 마스터했고 끝내 <오션스 일레븐>에서 광둥어를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대니 오션이 아이디어의 창안자라면 러스티 라이언은 디테일의 장인이다. 앙상블의 제1주연인 대니 오션 역을 클루니로 정하자마자 브래드 피트는 대니와 러스티 사이의 함수를 고심했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러스티는 자신의 몽상가 파트너의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킬까를 계획하고 어디서 발을 헛디딜지 정확히 예감하는 사람”이라는 것. 서로의 말꼬리를 주워담는 대사처리도 피트의 아이디어다. 대니의 강도 계획이 전처에 대한 사감(私感)에서 비롯된 사실을 알자마자 주모자를 계획에서 제외하려는 러스티야말로 로맨티스트 대니가 따를 수 없는 프로페셔널인 셈이다. 작고 고되고 망가지는 역을 마다않는 ‘프로페셔널’ 브래드 피트의 신조는 <오션스 일레븐>에서도 관철됐다. 클루니에 버금가는 ‘작은’ 역을 맡았고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서 마이크 마이어스가 썼던 가발을 쓰고 망가졌으며, 어쨌거나- 좀 억지스럽지만- 광둥어에 도전했지 않은가. 그러나 열심히 일한 그에게는 보상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실크셔츠와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온통 그의 차지였으니까. <조 블랙의 사랑>에서 땅콩버터를 탐닉하는 죽음의 신이었던 피트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막대사탕과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연기하면서 “설정이라기보다 제가 워낙 많이 먹어요”라고 밝혔다. 그가 인생을 탐닉한다는 표현이 비유만은 아닌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