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의 표적>이 그랬듯 <오션스 일레븐> 역시 그의 수갑이 풀리는 순간, 교묘하게 설계된 게임대 속으로 핀볼을 발사한다. 11명의 갱을 이끄는 대니 오션 역의 조지 클루니는, 말하자면 <오션스 일레븐>의 ‘주최쪽 인사’. <조지 클루니의 표적>의 촬영을 마친 클루니는, 스무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소더버그에게 쉴새없이 보내면서 반드시 영화를 다시 같이 만들자고 들들 볶아댔다. 그리고는 결국, 소더버그와 공동으로 영화사 ‘섹션 에이트’를 설립했다. 클루니와 맺은 계약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장난꾸러기 소더버그가 준 대답은 “헤어라인이 이마를 잠식해서 고민중인 조지가 나한테 머리숱의 25%를 증여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소원을 성취한 클루니는 섹션 에이트의 창립작품격인 <오션스 일레븐>을 위해 캐스팅 디렉터 역할까지 떠맡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브래드 피트가 분한 러스티 라이언이 그랬듯이. 소더버그와 10달러씩 모은 20달러를 줄리아 로버츠에게 보내며 “당신이 20(실제 단위 100만)을 받으면 영화에 출연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메모를 곁들여 설득한 것은 이제는 소문난 일화다.
이렇듯 짐작을 넘어서는 조지 클루니의 열의는, 예순일곱살인 지금도 라디오쇼에서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는 부친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ER>의 벼락스타로만 알려진 것과 달리 소모적인 소프 오페라 연기에 파묻혀 의욕을 잃어가던 연기 초년병 시절의 좌절과 첫 블록버스터 <배트맨과 로빈>이 그에게 안겨준 위기감에서 동력원을 찾을 수 있다. 그가 ‘교훈적인 모욕’이라고 부르는 영화 <배트맨과 로빈>은 클루니에게 “좋은 각본에서 나쁜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나쁜 각본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가르침만 남기고 검은 날개를 접었다. 이후 조지 클루니는 코언 형제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 아주 적은 출연료만 받고 출연했으며 1천만달러를 받은 <쓰리 킹스>에서는 영화의 완성을 위해 절반을 반납하기도 했다. “나는 케빈 스페이시와 다르다. 내게는 한 가지 상황을 서른 가지로 연기할 능력이 없다”라고 털어놓곤 하는 클루니는, 자신을 허약한 영화 안에서는 초라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배우로 중간평가하고 슬기롭게도, 훌륭한 감독과 좋은 시나리오를 방파제로 삼고자 붙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와 소더버그를 묶어주는 또다른 고리는 세련된 기교와 바로크적 남성미를 갖춘 1970년대 스튜디오영화에 대한 사랑이다. 시드니 루멧, 앨런 파큘라, 마틴 스코시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를 클루니는 주저없이 “나를 키운 영화”로 칭한다. 현재 조지 클루니는 <어느 멋진 날>의 속편을 거절하고 감독 입봉작 <위험한 마음의 고백>에 매진하고 있으며 4월 이후에는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하는 <솔라리스>와 코언 형제의 블랙코미디가 기다리고 있다.
<오션스 일레븐>에 대한 그의 인연 아닌 인연 몇 가지. 무작정 캘리포니아로 온 조지 클루니를 거둬준 숙모 로즈메리 클루니는 랫 팩과 어울리던 당대의 유명한 가수였다. 한편 클루니가 할리우드에서 발돋움하려 애쓰던 무렵, 그는 ‘랫 팩’의 패션을 본떠 당대를 주름잡던 로브 로, 알리 시디 등의 ‘브랫 팩’보다 두어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곤 했다. 또 나머지 하나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가장 많은 시간 스크린을 공유한 브래드 피트에 관한 것. 클루니는 <델마와 루이즈>의 오디션을 다섯번이나 봤지만 피트에게 히치하이커 역을 빼앗겼다. 분개한 그는 개봉 뒤 1년간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과 새로운 영화의 친연관계를 깔끔하게 부인하는 클루니지만, “나는 메소드 배우다. 그래서 이 영화를 위해 몇해나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대며 살아왔다. 나야말로 완벽하게 준비된 배우다”라고 주장하는 유머만큼은 출연진 중 누구보다 ‘랫 팩’답다. 그의 말대로, 시대가 허용하는 스타덤의 색깔은 모두 다르기에 이제 누구도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멋쟁이’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부패하거나 망가지지 않은 중년 남성의 매혹을 어색함 없이 체현할 수 있는 배우가 오늘날 있다면 그건 모든 남자의 리더이자 모든 여자의 연인인 조지 클루니 외에 찾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