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은 할리우드를 향해 안테나를 세운 호사가들에게 어느해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해였다. 그해, 할리우드 불러바드와 바인 스트리트에는 스타들의 손도장을 찍는 명예의 거리가 만들어졌다. 클라크 게이블은 캐롤 롬바드 곁에 영원히 잠들었고, 자넷 리는 <싸이코>의 45초짜리 샤워실 신을 위해 일주일간 초콜릿 소스를 뒤집어쓴 채 78개의 숏을 찍었다.
연감 한 구석에는 이보다 한결 사소하게 들리는 라스베이거스발 뉴스도 있다. 1960년 1월26일 라스베이거스 샌즈호텔 외벽에는 세간에 ‘랫 팩’(Rat Pack)으로 통하는 스타 군단- 프랭크 시내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피터 로포드, 조이 비숍- 이 몇주에 걸쳐 머물 것이라는 광고가 자랑스럽게 나붙었다. 장장 6주간 계속될 이 ‘파티’의 명분은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촬영이었다. 랫 팩의 우두머리 프랭크 시내트라는 <오션스 일레븐>을 통해 돈과 즐거움을 손에 넣고자 했고 그 둘은 어느 모로 보나 영화의 완성도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워너와 맺은 계약에 의해 배급 통로를 확보하고 있던 시내트라는 개봉 수익과 더불어 패거리 멤버들이 지분을 소유한 샌즈호텔의 주가를 높일 심산이었고, 그 과정에서 죽 맞는 친구들과 향연을 좀 벌인들 해가 될 리 없다고 믿었다. 물론 기자들을 불러들여 연예계 귀족들을 동경하는 대중의 우러름과 부러움을 부추기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시내트라가 메가폰을 쥐어준 루이스 마일스턴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의 수작을 필모그래피에 올린 감독이지만 당시는 <래시>의 TV시리즈판을 연출하며 풀 죽은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쇠약한 마일스턴이 혈기등등한 랫 팩 배우들에게 미칠 수 있었던 입김이라고는 카메라 앞에 그들을 모아놓고 대사를 읊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이처럼,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은 사적인 파티의 기념품에 가까운 영화였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신판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출소한 도둑 조지 클루니가 사랑하는 줄리아 로버츠를 채간 카지노 사장 앤디 가르시아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과 거사를 계획한다. 똑같은 제목, 그리고 대니 오션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이끄는 갱들이 감쪽같이 카지노를 털었다는 점 외에, 2001년판 <오션스 일레븐>을 1960년판의 리메이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톱스타들이 자유분방하고 무람없이 어울려 큰일을 도모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하지만 21세기 ‘오션스 일레븐 클럽’의 멤버십 요건은 사뭇 다르다. 노동 규율의 수호천사(?)로 불릴 만큼 근면한 소더버그는 술에 전 전작의 유령을 두려워한 탓인지 “현장에 나올 때는 일할 태세를 갖춰서 오십시오. 술렁술렁 해치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누구든 잘난 체하면 우린 다 망하는 겁니다”라고 싸늘히 으름장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랫 팩이 놀기 위해 모였다면 이들이 모인 까닭은 일하기 위해서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등이 개런티 삭감을 무릅쓰며 모여든 것은 친분 때문이 아니라 좋은 감독과 프로젝트를 붙들고 그럼으로써 캐리어를 보장받으려는 현실적인 목표 때문이다. 1960년대 청년문화가 대중문화의 중원을 점령하기 전, 향락적인 성인 남자의 초상이 쿨한 아이콘으로 통했던 마지막 시대의 우상 랫 팩과 달리 이들은 시대를 리드할 뜻도 라이프 스타일의 전시에도 관심이 없다. 이들이 잠시라도 랫 팩의 흉내를 낸다면 그건 마케팅팀이 주문한 포즈를 취할 때뿐이다.
조지 클루니는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랫 팩만큼 쿨해질 수 없다.우리 영화의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고 아무런 아쉬움 없이 단정한다. 줄리아 로버츠는 온갖 걸작의 리메이크 제의를 거절하고 왜 삼류영화의 개작에 뛰어들었냐는 질문에 “개선할 여지가 없는 영화라면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당차게 반문한다. 120% 쿨한 실용주의 철학을 가진 워커홀릭들, <오션스 일레븐>의 아가씨와 건달들을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