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을 괴롭히는 테리 베네딕트. 경쟁자의 카지노를 차례로 망하게 하고, 카지노 업계의 제왕이 된 냉혈한. 하루의 일과가 일분일초도 틀리지 않는 철저함으로, 애인의 전 남편을 감시카메라가 없는 빈방에서 구타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협잡꾼. <오션스 일레븐>의 앤디 가르시아는 악역이고,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타입의 인간이다.
하지만 ‘차가운’ 앤디 가르시아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인상을 굳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건 실수가 아니다. <오션스 일레븐>이 ‘하드보일드’하거나, 아주 가벼운 요즘 영화의 스타일을 답습했더라면 앤디 가르시아의 연기는 실패다. 그러나 스티븐 소더버그가 택한 것은, 스윙 재즈의 리듬에 맞춰 ‘한번 춰볼까’ 하는 정도의 고전적인 정취다. 보면서도 <오션스 일레븐>이 ‘현재의’ 이야기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라스베이거스의 전기를 한꺼번에 끊어버릴 수 있는 첨단폭탄이 등장해도 마찬가지다. 걷는 법, 숨쉬는 법, 말하는 법과 싸우는 법까지도, 이건 50년대다. 앤디 가르시아의 붕 뜬 캐릭터가 <오션스 일레븐>에서, 슬며시 안착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들의 ‘분장’은 쉽게 눈에 드러난다.
베네딕트와 달리 앤디 가르시아는 다정한 남자다. 알 파치노의 뒤를 이을 것만 같았던 <대부3>의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뒤에도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내지르던 알 파치노의 사자후를, 앤디 가르시아는 토해낼 수 없으니까. 그러나 앤디 가르시아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조각상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슬쩍 손톱이라도 닿으면 당장 피가 흐를 것만 같은. 은퇴하기를 원하는 킬러를 연기한 <덴버>에서의 모습도 그랬다. 냉정하게 총을 쏘기는 하지만, 영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 그는 유약하고, 그는 온순하고, 그는 사려깊다. <유혹은 밤그림자처럼>에서 리처드 기어와 인상적인 연기 대결을 펼쳤을 때부터 그랬다. 그에게 악역은 어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기고만장한, 또는 천방지축의 삶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별세계의 광란인 것처럼.
개봉을 앞둔 <리빙 하바나>의 풍경이 펼쳐지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태어난 앤디 가르시아는 5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TV에 출연하고, <언터쳐블>로 얼굴을 알린 앤디 가르시아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대부3> 이후 꾸준하게 성장한다. <환생>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리틀 빅 히어로> <제니퍼 연쇄살인사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앤디 가르시아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저예산영화에 눈을 돌린다. <덴버> <데쓰 인 그라나다> <리빙 하바나> 등의 작은 영화에서, 앤디 가르시아는 ‘스타덤’에 의존하지 않는 배우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미모나 카리스마, 스캔들 등으로만 평가받기를 거부한 것이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앤디 가르시아는 평범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오션스 일레븐>이 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매력적인 악당은 필요없다. 원하는 것은 매끈한 얼굴의 차가운 남자다. 성실하게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왔던 그 남자가 적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