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그러나 마음은?"
연홍은 어떤 인물? 눈치로 관상 보는 기생. 칩거하고 있던 내경을 세상으로 불러내고 그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수완꾼.
김혜수라니! 레스토랑에서 그녀를 만났다. 선글라스를 끼고 저 멀리서 들어오는데 벌써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연홍과 똑같더라. “날 수양대군을 시켜달라”고 하더라. (웃음)
연홍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캐릭터다. 그런데 남자만 득시글거리는 시나리오를 보니 갑갑하더라.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런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배포가 크고 약삭빠른 면도 있는 강인한 여자. 누가 봐도 배우 김혜수의 역할이었지만, 중요성에 비해서 분량이 많지 않아 제안하기가 괜히 미안하더라. 그래도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에서 프러포즈를 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기생 연홍이 재밌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다. 김혜수의 연홍에게서 재밌는 부분 하나는 김혜수식 스타일의 창조였다. 현대극에서 그녀가 입는 의상의 재질과 색을 연홍의 한복에 고스란히 응용했다. 머리 스타일도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했던 현대적인 스타일이 가미된다. 그러니 수양대군과 더불어 우리 영화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역할이다.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굉장히 차가워 보이는데 사실은 정이 많다는 것. 지렁이젤리를 가지고 와서 모두에게 나눠주고, 남 추운 거 잘 못 보는 성격이라 보조 출연자들을 잘 챙긴다. 촬영 전부터 지금까지 뮤직비디오, 공연, 클래식, 기사 정보를 끊임없이 보내주며(딴 맘이 있는 건 아닐 테고!) 내 창작욕을 자극한다. 작품과 연기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기보다 이렇게 에둘러 대화를 나누는 그녀만의 스타일. 프로페셔널한 정확함 뒤로 그녀의 다른 면모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