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극장으로 피서 가자
2014-07-23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2014 시네바캉스 서울
<육체의 악마>

한여름의 영화축제 ‘2014 시네바캉스 서울’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7월24일부터 8월24일까지 한달간 열린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도심 속에서 영화를 벗 삼아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영화제다. 올해 시네바캉스 서울은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시네필의 산책’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문제를 독창적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들로 구성되며, 두 번째 섹션 ‘섹스는 영화다’는 섹스를 소재로 한 도발적인 영화들을 선보인다. 마지막, ‘파국-드 팔마 & 만’은 미국의 대표적인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와 마이클 만의 주요 작품들로 채워진다. 주요 상영작 5편은 영화해설 시간이 마련된다. 이외에 시네토크, 포럼, 비평좌담 등 다양한 특별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포럼에서는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비평좌담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신작 <프란시스 하> 상영 뒤 이루어진다.

<시벨의 일요일> 세르주 브루기뇽 / 프랑스 / 1962년 / 110분
12살 소녀와 퇴역군인 사이의 인연과 특별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피에르는 전쟁에서 사고로 아이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시벨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수녀원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피에르는 우연히 시벨을 알게 되고 왠지 모를 연민을 느낀다. 피에르는 시벨의 아버지인 척 행세하고 일요일마다 시벨을 데리고 외출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시벨은 당돌하고 발랄하며 때론 조숙한 태도로 피에르를 놀라게 한다. 둘은 상처받은 영혼들만이 위무할 수 있는 정서적 교감을 이루지만 세상은 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해와 편견은 인간관계를 정형화시켜버리고 피에르와 시벨에게 마음대로 낙인을 찍어버린다. “이름이 없어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는 시벨의 마지막 대사는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의 외침이다.

<희미한 곰별자리> 루키노 비스콘티 / 이탈리아 / 1965년 / 103분
루키노 비스콘티 특유의 귀족적인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우아한 멜로드라마다. 미국에서 부유한 결혼생활을 하던 산드라는 남편 앤드류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볼테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고색창연한 대저택에는 집을 떠난 걸로 알려진 산드라의 오빠 지아니가 머물고 있었다. 전원에서 펼쳐지는 고풍스러운 삶이 궁금했던 미국인 앤드류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주위에 산드라의 과거에 대해서도 묻는다. 그런 과정에서 앤드류는 무언가 이상한 기미를 느낀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산드라의 엄마, 지나치게 가까워 보이는 남매, 나치 치하에서 의문사한 산드라의 아버지까지, 이들 가족의 비밀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그리스 신화 일렉트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멜로드라마로 재해석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디지털로 복원된 버전으로 상영된다.

<바이 바이 몽키> 마르코 페레리 / 이탈리아, 프랑스 / 1978년 / 113분
데카당스한 주제의식과 분위기가 독특한 작품으로 배경인 뉴욕을 낯선 공간으로 묘사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주인공을 맡고 있다. 로마 제국을 테마로 장식된 작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라파예트와 루이지는 허드슨 강변에서 거대한 킹콩 모형을 발견한다. 라파예트는 킹콩 모형에 숨어 있는 새끼 침팬지를 집으로 데려와 자식처럼 돌본다. 줄리어스 시저, 클레오파트라 등 로마시대 인물 조각상이나 로마 유물 모조품 등을 전시한 키치적인 박물관은 영화의 주요 공간이자 이색적인 볼거리다. 라파예트와 루이지는 뉴욕에 거주하는 자유분방한 예술가, 예술 애호가들과 교류하며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전통적이고 사회적인 관습이나 가치에 반항하며 기성 문화를 전복하려고 한다. 고대 로마와 현대 뉴욕의 문화를 기발하게 접목시킨 작품으로 파국적인 결말이 인상적이다.

<육체의 악마> 마르코 벨로키오 / 이탈리아, 프랑스 / 1986년 / 112분
고등학생과 유부녀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차이’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고등학생인 안드레아는 어느 날 수업 도중 건너편 건물에 사는 줄리아를 보게 된다. 순간 줄리아에게 이끌린 그는 교실에서 뛰쳐나와 줄리아를 쫓아간다. 줄리아를 미행한 안드레아는 그녀의 남편이 정치범으로 수용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줄리아는 안드레아에게 먼저 접근하고 안드레아는 줄리아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의 아버지는 줄리아의 병력을 알고 아들을 말리지만 안드레아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육체적 탐닉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인간의 운명적인 조우라는 주제를 다룬다. 영화의 마지막, 안드레아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려준다.

<로망스>

<로망스> 카트린 브레이야 / 프랑스 / 1999년 / 95분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이야의 초기 작품으로 과감한 성적 표현으로 화제가 됐다.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거침없는 영상으로 구현했으며, 여성에게 성이란 무엇인지 솔직하고 대담하게 질문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마리는 잘생긴 모델 남자친구가 있지만 성적 불만을 갖고 있다. 자기애로 가득 찬 남자친구는 성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만을 원할 뿐이다. 성적 불만을 애정 결핍으로 느끼는 마리는 다른 남성을 찾아나서고 그러던 중 교장인 로베르를 만나게 된다. 가학적 성애를 즐기는 로베르는 마리를 경험하지 못했던 성적 세계로 인도하고, 마리는 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수위 높은 성적 표현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여성의 성을 도발적으로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여성의 성적 탐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이 ‘로망스’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성의 원초적 성적욕망과 사랑, 혹은 환상이 맺고 있는 관계를 파고드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 맘!> 브라이언 드 팔마 / 미국 / 1970년 / 87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조류 속에 등장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초기 작품이다. 히치콕을 사숙한 감독답게 이 영화도 히치콕의 대표작 <이창>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신만의 변형이다. 주인공 존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히치콕이 그랬듯 브라이언 드 팔마도 관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히치콕의 <이창>은 망원경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엿보는 정도였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는 한 걸음 나아가 앞집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만들려 한다. 투자자에게 이미 돈까지 받은 존은 최신형 카메라를 창가에 세워두고 건너편 아파트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여성 주디에게 접근하여 자신이 직접 영화에 등장할 계획까지 세운다.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중요 이슈인 흑인인권운동이 관음과 연결되는 뜻밖의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필사의 추적>에서 영상이 아닌 소리의 관음 문제를 다룬다.

<낙원의 유령> 브라이언 드 팔마 / 미국 / 1974년 / 92분
멀리는 <파우스트>, 가까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록 버전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음반 제작자 스완은 ‘파라다이스’라는 록콘서트장을 열고 오디션을 진행하다 뛰어난 작곡 실력을 갖춘 윈슬로우를 발견한다. 윈슬로우는 <파우스트> 이야기를 록 버전 칸타타로 바꾸는 방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윈슬로우는 자신의 노래를 불러줄 완벽한 디바 피닉스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작곡을 완성한다. 하지만 노회한 제작자 스완은 처음부터 윈슬로우의 곡을 빼앗을 계획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스완은 윈슬로우를 꼬드겨 그의 음악을 빼앗은 뒤 악명 높은 감옥으로 보내버린다. 자신의 곡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음반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된 윈슬로우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복수를 위해 스완을 찾아간다. 남의 창작품을 훔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이자, 1970년대 미국 록음악계를 조롱하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컬트 취향의 영화이나 영생과 창조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라는 고전적인 주제의식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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