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공포영화 제작이 무서워요
2014-08-05
글 : 송경원
부실한 기획/적대적 시장, 설 자리를 잃은 한국 공포영화
<터널 3D>

계속된 가뭄에 우물까지 말라붙었다. 올해 제작, 개봉하는 한국 공포영화는 <소녀괴담>과 <터널 3D>, 단 2편뿐이다. 비단 올여름 개봉작의 문제만은 아니다. CJ E&M, 롯데, 쇼박스 등 주요 투자배급사의 내년 라인업을 뒤져봐도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공포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내년 개봉예정인 공포영화(로 짐작되는 작품)마저 공포영화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려 애쓰는 모양새를 보면 “제작사와 투자사들이 공포영화 제작을 무서워한다”라는 한 배급 관계자의 우스갯소리를 농담으로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기획 전반에 호러적 요소를 띠고 있더라도 이는 최소화한 채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대부분이고 공포영화의 전통적 공략 시점인 여름 시장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현재 추세”라는 게 해당 영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녀괴담>

질적 하락이 야기한 적대적 시장

공포영화 시장에 대한 위기론은 해마다 반복됐고, 지적되는 문제도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괴담 근처만 맴도는 식상한 소재, 원혼에 매달리는 안일한 기획, 연출력의 부재로 인한 질적 하향평준화 등의 문제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들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같은 지적들이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5, 6년 전부터 제기된 이러한 문제점이 그동안 한치 변화도 없이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달아 스릴러 영화를 제작 중인 미인픽쳐스의 안상훈 대표는 “웰메이드 공포영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외적으론 여름 시장에 맞춘 제한된 제작기간에 저예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 신생 제작사가 아닌 이상 선뜻 뛰어들긴 난감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내적으론 오히려 만듦새와 노하우가 필요한 장르라 신생 제작사가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라며 공포영화가 쉽지 않은 분야임을 토로했다.

2004년 <인형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소기의 성과를 올린 <더 웹툰: 예고살인>, 올해 <터널 3D>까지 꾸준히 공포영화에 도전 중인 필마픽쳐스의 한만택 대표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그간 공포영화가 신인감독들의 배출창구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더이상 손쉽게 데뷔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며 시장 환경의 변화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수요가 받쳐주던 2004년 무렵부터 유사 기획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손쉽게 접근 가능한 시즌영화로 자리잡았”지만, “공포영화는 원래 제작비도 많이 들고 장르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작업이 이어져야 성취를 얻을 수 있는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라는 것이다. <불신지옥>(2009)으로 입봉한 이용주 감독은 당시의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공포는 원래 검증된 대가들의 마스터피스 같은 장르다. 다만 산업적인 관점에서 한때 신인감독들의 입봉 전략으로 유효한 측면이 있었다. A급 캐스팅이 아니더라도 만듦새에 따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B급 전략이 가능한 몇 되지 않는 장르”였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영화 시장과 제작 환경 모두 공포영화에 적대적이다. 공포영화 전문제작사를 표방하는 고스트픽쳐스의 이종호_대표는 “원래 특정 팬층을 공략하는 마니악한 장르”이긴 하지만 지금은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장르 팬 대신 일부 10대 관객이 주요 공략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시장이 좁고 확장성이 부족한 ‘현상’은 동일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공략 관객의 결이 달라진 것이다. 신인감독, 신인배우의 배출창구가 된 초기의 순기능은 2000년대 중반부터 공포영화의 자기복제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그 빛을 잃었다. “질 낮은 공포영화의 양산이 결국 시장 전반의 불신으로 번진 것”이라는 JK필름 장진승 이사의 지적은 여러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불만이다. “몇년 사이에 10, 20대 관객에 한정된 협소한 시장으로 굳어졌다. 10대 관객에 맞춘 안일한 기획이 반복되는 사이 장르 전반의 질이 하락하고 전통적인 호러 팬들마저 발길을 돌리며 시장이 축소되는 악순환이 몇년째 반복, 축적된 결과”가 현재의 부정적인 시장 환경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 웹툰: 예고살인>

새로운 아이템이 없다

하지만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시장의 배타적인 분위기만으로 현재의 고갈을 설명하는 건 지나치게 안이하다. “위기는 늘 지적돼왔는데 왜 하필 올해 이같은 극단적인 결과가 나온 건지” 도리어 의문을 제기하는 제작사도 적지 않다. 제작 편수가 급감하며 전반적인 체질 개선 시기로 이해됐던 2008년 이후에도 한국 공포영화는 적게는 3편, 많게는 5편까지 꾸준히 제작돼왔다. 개봉 수익도 크게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일 없이 기존 박스오피스 수준을 유지했다. 2010년 <고死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이 87만명, 2011년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가 79만명, 2012년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가 86만명으로 100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스코어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더 웹툰: 예고살인>이 120만명을 동원해 간만에 활력을 더했다. 심지어 외국 공포영화 <컨저링>에는 220만 관객이 몰려 공포영화를 원하는 관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바로 다음해인 지금 오히려 기획되는 영화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볼 때 “시장을 견인할 대박영화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일부 낙관적인 전망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쯤 되면 시나리오 자체가 생산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투자단계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해 시나리오도 없고 설사 있더라도 선택될 만큼 괜찮은 이야기는 흔치 않다. 시네그루다우기술의 함진 투자팀장은 “올해 초부터 호러영화 시나리오를 찾았지만 찾지 못해서 오히려 안타깝다”라며 “투자배급하는 입장에서 공포영화는 여전히 한해 한편 정도는 라인업에 갖추고 싶은 아이템이기에 수요가 아예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양이 준 것은 있지만 간혹 보이는 시나리오도 함량미달이 대다수인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천편일률적인 시나리오들을 안타까워했다. “한 맺힌 귀신이 복수하는 소위 한국형 호러는 볼 만큼 봤다. 관객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데 여전히 괴담 수준을 맴돌고 있다”라는 것이다. CJ 투자팀 이창현 부장 역시 줄어든 편수와 시나리오의 자기복제문제를 지적했다. 동시에 “공포보다는 스릴러로의 변주가 많다. 지난해 개봉한 <숨바꼭질>의 영향이 있다. 이왕이면 확장성이 증명된 장르로 접근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스릴러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공포영화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고 있는 인식의 연결고리다. “기왕에 크게 차이나지 않는 제작비라면 10대 관객에 묶여 있는 현재의 공포영화보다 시장 확장성이 충분한 스릴러, 미스터리 영화로의 변주가 기획, 제작 측면에서 더 매력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자연스레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이같은 적대적인 제작 환경에 대해선 제작사들도 기본적으로 견해를 함께했다.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만든 수필름의 민진수 부대표는 “아마 대부분의 제작사가 공포영화 시나리오 한두개쯤은 쥐고 있을 것”이라며 시나리오 자체의 고갈은 부정하면서도 “기존의 관습에 기댄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관객의 변화된 기호에 맞춘 새롭고 참신한 기획을 찾기 힘들다”라며 기획력 부재는 인정했다. 하지만 “공포영화를 바라는 관객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것은 아니”라며 시즌영화로서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스트픽쳐스의 이종호_대표 역시 “미스터리물이 다수인 미국 드라마, 장르문학, 웹툰 등의 영향으로 장르물에 호의적인 관객도 늘었다. 문화적 저변은 오히려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라며 지난해 <컨저링>의 이례적인 흥행 사례를 언급했다. “공포와 드라마를 함께 섞어가려는 한국형 공포의 강박과 달리 공포 효과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이 <컨저링> 같은 외화의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컨저링>

‘일상 공포’라는 우회로의 발견

<컨저링>의 흥행은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지 한번쯤 의심하게끔 만든다. 사실 <컨저링>이 선보인 공포는 새로운 상상력, 뜻밖의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오멘> 시리즈처럼 고전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 젊은 관객에게 차별화된 부분”이 크다는 게 <컨저링>을 홍보한 올댓시네마 김태주 팀장의 분석이다. “공포영화 마니아에게는 새로울 게 없는 영화였지만 귀신, 원혼, 저주 등 한국형 공포에 피로감을 느낀 관객에게는 이처럼 이유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하지만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공포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는 말이다.

한편으로 이같은 “일상 공포에 대한 수요”는 <숨바꼭질>로 대표되는 최근 스릴러영화의 흥행과도 맥을 같이한다. 관점에 따라 <컨저링>의 200만 돌파는 공포영화 장르 저변의 확대가 아니라 <숨바꼭질> 같은 스릴러 장르의 연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숨바꼭질>의 흥행이 업계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준 것 같다. 관객층이 한정된 공포라는 틀이 아니라 공포효과는 주되 다른 방식으로 우회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것”이라는 이창현 부장의 언급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올 하반기 개봉예정인 공포스릴러 <맨홀> 역시 유사한 사례로 보인다. 제작사 화인웍스의 김상은 이사는 “이야기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지만 어둡고 익숙한 공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더 웹툰: 예고살인>의 선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투자대비 만족스러운 성과라고 보긴 어려운” 가운데 아직까지 공포영화라는 프레임은 되레 관객 확장에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맨홀>이 접근하는 ‘일상 속 공포’라는 소재는 공포영화들이 시장 요구에 맞춰 기존 장르의 관습에서 탈피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변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유사한 사례는 전통적인 여름 시즌 공포영화 안에서도 이어진다. 올해 개봉하는 <소녀괴담>은 하이틴 로맨스와 공포영화와의 결합이 두드러지고, <터널 3D>는 3D 방식이 줄 수 있는 공포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기획이 눈에 띄는 영화다. <터널 3D>를 제작한 필마픽쳐스쪽은 “공포보다는 3D 콘텐츠로 투자 진행을 할 수 있어 여느 공포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라고 한다. <소녀괴담>쪽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강화된 하이틴 로맨스적 설정이 캐스팅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기존 배우들이 꺼려하는 공포영화 이미지를 희석시켜 대중적인 저변을 확대하는 우회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존의 공포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캐스팅이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내제작 환경에서 저예산, 신인감독, 배우 시스템으로 굳어진 공포영화 제작 시스템은 이미 출발선부터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 이같은 여러 우회 전략은 생존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만 프레임에 밀려나는 중소 규모 영화들

현재의 공포영화 제작 증발현상은 위축된 시장과 함께 전반적인 제작의지가 움츠러든 측면이 크다. 하지만 문제인식을 여기서 멈추는 건 창작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또 하나의 손쉬운 해석이다. 이 시점에서 단순히 시장에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제작배급 방식의 변화와도 연결지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로 한국 공포영화의 문을 연 씨네2000의 전려경 PD는 “멀티플렉스 위주의 와이드 릴리즈 배급방식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상영으로 치고 빠져 단기간 수익에 집중하는 와이드 릴리즈 방식과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팬들과의 오랜 소통이 필요한 공포영화와는 배급의 접근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의 패키징이 훨씬 중요해진 지금과 같은 배급 환경 아래에서는 비단 공포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 인디영화들의 접근 통로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유행하는 몇몇 장르영화 말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적대적 배급망이 공포영화를 비롯한 여러 마이너한 장르들을 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엔 라인업을 갖춘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투자 입장에선 적게 들이고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시장을 바라지 않는다. 돈을 잃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한 투자관계자의 답변은 현재 한국 영화계의 쏠림현상의 무의식적 욕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에 매달리는 지금의 분위기 아래서 정통 장르영화는 더이상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다. “예전에는 제작사가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를 받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엔 기획단계부터 투자배급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 제작사가 특별한 의지를 갖지 않는 한 공포영화는 초반에 재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제작사쪽의 고백은 여러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공포영화의 고갈은 단순히 한 장르가 외면받는 국지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볼만한 공포영화가 없는 건 문제다. 하지만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과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2011년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를 연출한 김곡 감독은 “그때와 비교하면 훨씬 설 자리가 적어졌다. 정통 호러는 없고 여러가지 변주가 난무하는데, 시장이 각박하다보니 장르적 상상력에 대한 허용치가 좁다. 만약 지금 누군가 공포영화로 데뷔한다면 말리고 싶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전려경 PD는 “공포영화는 여전히 유력한 백업 장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거장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장이 될 때도 있고 쉬어가는 페이지로서도 의미가 있다”라고 필요성을 언급했다. 큰 맥락에서 보면 “영화의 다양성을 장려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장르지만 공포영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허리가 없어지고 있다”라는 김곡 감독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인터뷰에 응한 여러 감독과 제작자는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공통적으로 희망한 부분이 있다. 몇편의 히트작도 중요하지만 중견감독, 인지도있는 배우들이 공포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과감히 도전해준다면 공포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금씩이나마 전환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김곡 감독의 말처럼 아마도 “의지를 가지고 꾸준하게 박치기하는” 것 말곤 달리 길은 없을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 같은 옴니버스 방식도 좋고, <여고괴담>처럼 꾸준히 시도되는 시리즈의 확장도 좋다. 기성감독들은 물론 의지를 가진 젊은 작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유효한 방식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 새로운 분기를 마련해줄 작품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를 호출하는 걸작은 까다로운 제약을 극복하려는 발버둥 속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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