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천 감독은 공포영화 마니아다. <소녀괴담> 이전에 만든 단편 <변신이야기> <모멘트>, 옴니버스영화 <십이야: 깊고 붉은 열두개의 밤 Chapter1>(현재 제작 중)은 모두 스릴러, 공포 장르에 발을 걸치고 있다. 안병기_감독 이후 거의 처음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 전문 감독’이랄 수 있겠다. 멜로와 코미디가 섞인 공포영화 <소녀괴담>으로 장편 데뷔한 오인천 감독을 부천에서 만났다. 오인천 감독은 신인감독이 공포영화로 데뷔할 때 겪을 수 있는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솔직한 얘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48만여명이 <소녀괴담>을 봤다.
=이제야 좀 안도가 된다. 여담인데,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때 선글라스를 끼고 갔다. 멋부리려고 쓴 게 아니라 눈병이 나서 쓴 거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전까지 극도의 부담을 느꼈고,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소녀괴담>은 귀신을 보는 소년과 귀신의 사랑 이야기다. 거기에 학교폭력 문제가 가미됐다. 사실 이야기가 새롭진 않다.
=부천까지 먼 길 오셨으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겠다. (웃음) 이종호_작가님이 십대를 타깃으로 한 학원공포물로 기획했던 영화다. 처음엔 박기형 감독님이 연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차했고 그 뒤 내가 합류했다. 처음에 시나리오 봤을 때, 뻔하고 올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공포에 멜로와 코미디 장르를 혼합한 것이 새로웠다. 혼합 장르 요소를 잘 살리면 미덕이 있는 공포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름 한철 기획되는 공포영화의 경우 신인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소녀괴담>을 만들면서는 어땠나.
=이종호_작가님은 시나리오작가이면서 고스트픽쳐스 대표이지 않나. 처음에 얘기하시길 자신은 프리 프로덕션 때까지만 의견을 내고 촬영에 들어가면 내게 다 맡기겠다고 하셨다. 예산과 회차만 잘 지켜달라더라. 그런데 예기치 않은 간섭이 현장에서 좀 있었다. 신인감독이라서 공포영화에 대한 이해가 낮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치고는 표현의 수위가 약한 편인데.
=등급을 고려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만들 건 아니었으니까. 징그럽고 무섭고 살벌한 공포 대신 타이밍을 뺏는 공포를 해보려 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10만명의 익스트림한 공포영화 관객을 만족시킬 것이냐 아니면 대중이 두루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를 만들 것이냐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는데 결국 후자를 택했다. 공포영화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관객이 공포영화 장르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르 혼합에 관해선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멜로보다 코미디가 더 잘 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안고 가는 공포는 관객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쉼표의 요소를 넣고 싶었다. 그게 코미디면 좋을 것 같았고, 김정태 선배가 적역일 것 같았다. 그나마 김정태라는 배우의 친숙한 이미지 때문에 후반부에 말도 안 되는 천도제 장면이 덜 유치하게 그려진 것 같다. (웃음) 멜로 요소는 전형적이긴 하지만 그 전형성이 친숙함으로도 작용한다고 판단했다. 멜로가 세지면 공포가 약해지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간 측면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이 영화가 마스크 괴담으로 홍보된 거다. 마스크 괴담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살벌한 공포를 생각하고 극장을 찾을 텐데, 우리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관객이 30만명은 덜 든 것 같다. ‘마스크 괴담 아니잖아? 재미없네. 노 잼. 평점 1점.’ 이렇게 되는 거지. (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입학이 늦던데.
=1980년생인데 영상원에 2007년에 들어갔다. 공고 졸업하고 영화와 무관한 사회생활을 하다가 수능성적이 필요 없는 한예종에 입학했다. 어릴적부터 영화, 특히 홍콩 누아르, 공포, 스릴러영화들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앞으로도 꾸준히 공포영화에 집중하고 싶은가.
=롤모델이 두명 있다. 미이케 다카시와 두기봉. 어느 정도 공포영화로 내공이 쌓이면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