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계라는 생태계에서 건강히 생존하기
2014-10-09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윤성호 감독

“내가 그리고 있는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식당을 차리기 전까지는 떠돌이 요리사로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내 레시피를 선보이는 것이 뭐 어떤가요. 먹는 사람이 맛있다면 된 거 아닐까요. 전 떠돌이 요리사로 지내는 게 즐거워요.” <은하해방전선>(2007),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 <도약선생>(2010)으로 독특한 윤성호식 세계관을 만들어낸 윤성호 감독의 이후 행보는 다소 뜻밖이었다. 영화감독이 시트콤(<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을 연출하겠다고 했을 때 세상은 조금 시끌시끌했다. 그 뒤 윤성호 감독은 차례로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2013), <썸남썸녀>(2014), <출중한 여자>(2014)를 연출했고, 대중은 그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든 더이상 의아해하지 않게 됐다. 윤성호식 “레시피”가 대중의 입맛에 맞은 모양이다.

-그런데 왜 “떠돌이 요리사”를 자처하나.
=2000년대 영화계는 나쁘게 말하면 주먹구구식이었다. 이 사람의 기질과 창의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니 일단 작가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가 이뤄지던 때다. 검증은 안 됐지만 그 혼돈이 주는 활력이 분명 있었다. 그 덕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세 친구> <낮은 목소리> 같은 좋은 영화들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 정도 규모 영화에 이런 기질은 안 맞는다, 맞는다, 그러면 감독으로는 누가 적당하겠다, 이런 데이터가 정리돼 있잖나. 요즘은 누가 독립 장편을 재밌게 만들었다고 하면 더 규모가 큰 산업의 러브콜을 받는 경로로 가게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산업의 다른 풀처럼 치부돼버리는 거다.

-독립장편영화 대신 시트콤, 웹드라마 연출에 뛰어든 것은 “혼돈”을 돌파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나 보다.
=예전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했다고 할까. (웃음) 지금 꾸준히 작품하는 감독님들도 예전엔 인디포럼에서 단편작업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알아서들 서로 잘 교류하고,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러웠을 땐데 지금은 상업영화면 상업영화, 독립영화면 독립영화, 뚜렷하게 양극화된 것 같다. 상업영화, 독립영화 생각하지 않고 장편 잘 만들면 많은 대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요원해졌다는 걸 이젠 우리도 다 알지 않나. 극장용 영화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론 없어진 거다.

-그럼에도 꾸준히 독립영화 진영에 머물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난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다. 오멸 감독님이 지역 토착 커뮤니티를 전제한 영화를 꾸준히 하시듯 모든 감독들은 각자 자기가 기대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신념일 테고, 누군가는 담론일 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을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대중의 흥미와 호응에 기대고 싶다. 분식집 메뉴 개발하듯 소소하고 다양하게.

-‘본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망설임은 없나.
=대중의 눈에 띄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항상 장편 시나리오는 쓰고 있다. 다만 나는 두문불출, 문걸어 잠그고 들어가 일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뿐이다. 내가 비록 당장 영화를 하고 있진 않지만 독립영화에서 출발한 창작자로서 분명 우려하는 건 있다. 영화계도 하나의 생태계로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한쪽이 비대해지면 한쪽은 무너지게 돼 있다. 그래서 공적인 영역에서의 지원이 필요한 거다. 독과점을 막든 꾸준히 아카이빙하는 단체에 기회를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당장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야말로 창작자가 더 신선하고 건강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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