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관객부터 탓하지는 말자
2014-10-09
글 : 오정연
사진 : 백종헌
인디스토리 대표 곽용수

인디스토리가 북악산과 인왕산을 병풍처럼 두른 서촌 한복판에 둥지를 튼 것이 1998년. 조용하기만 했던 이곳이 맛집이 즐비한 ‘뜨는 동네’가 되기 직전이었을 10년 전의 독립영화와 10년 전의 인디스토리에 대해, 곽용수 대표에게 물었다. “피부에 와닿는 어려움은 없었던 때다. 최초의 제작작품이자 조영각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팔월의 일요일들>을 준비했다, 망했지만. (웃음)” 제작•배급작을 돌아봄에 있어 ‘망했지만’은 필수 어휘목록 첫 번째. 그래서인지 10년 전 개봉했던 <송환>을 떠올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밝다. “극장 관객이 2만명 이상 들었고 공동체 상영 시도도 성공적이었다. 계속 단편 배급을 하다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장편 배급을 시작한 게 2000년이었는데, <송환>은 인디스토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보람과 위안을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대기업의 지원 없으면 안정적 운영 힘들어

<송환>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배급작이라면 단연, 300만 가까운 극장 관객을 동원한 최고의 흥행작 <워낭소리>(2009). 10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점 역시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아졌던 그 무렵, “해보려고 마음먹은 것들을 제대로 치고 나가지 못한” 것인데, 아시아 독립영화 네트워크가 그중 대표적이다. 일본, 홍콩, 대만 등 각국의 독립영화 단위간의 공동제작이나 배급을 시도하는 형태를 구상했는데, “아시아에서는 그나마 독립영화가 가장 잘 ‘되는’ 한국”이 나섰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배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격전지는 역시 극장. 곽용수 대표에게 최근의 가장 ‘힘빠지는’ 뉴스와 지난 10년 가장 실질적인 성과가 모두 자연스레 극장과 관계돼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 심사결과는 “독립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 수가 20개로 줄었다”는 면에서 인디스토리엔 직접적인 변화다. 반면 독립 영화계의 오랜 숙원이었고, 정부지원전용관으로 시작한 이후에도 우여곡절을 겪다가 민간독립영화전용관으로 부활한 인디스페이스는 소중하고 가시적인 성과다.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심사결과에 대해 그는 “그래도 10년 가까이 있었던 정책인데 점진적인 개선이 아닌 단칼에 잘라버리는 방법”이 가장 아쉽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금의 인디스페이스가 있기까지, “결국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게 되면 공간 자체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라며 “독립영화도 자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에게 독립영화는 맹목적인 당위가 아닌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친구다.

졸업 후 사회에서 담당할 역할을 고민했던 20대의 그에게 영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시네필들의 마음의 고향인 ‘문화학교 서울’ 사무국장으로, EBS <시네마천국> 작가로, 직접 부딪히면서 영화를 공부하던 그 무렵 “상업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롭다는 점” 때문에 독립영화에 이끌렸다. “재미와 책임의 일환으로 배급사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인디포럼 등 영화제에 깊이 관여하면서부터였다. 그런 인디스토리가 10년 전부터 제작에 발을 들인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10년 전 제작한 두 영화는 두 가지 큰 이유를 설명해준다. “기존의 게릴라 방식이 아닌 합리적인 지원이 보장된 시스템으로 독립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어서 <팔월의 일요일들>을 시작했고 능력 있는 젊은 감독들이 본인의 재능을 오직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소진하지 않고 젊었을 때 그 재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눈부신 하루>를 제작했다.” 이 밖에도 윤성호 감독의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처럼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한 방식, 시스템, 매체 등을 고민했던 그의 제작 필모그래피는 유난히 다채롭다. 인디스토리 10주년을 지나며 제작한 첫 번째 상업영화 <티끌모아 로맨스>는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에 목말라서 시작했다가 한예슬, 송중기 등이 캐스팅되고 CJ까지 배급사로 붙으면서 점점 커져간” 영화였고, 지난해 개봉한 <사랑해! 진영아>는 상업영화라기보다는 저예산영화에 가까웠던 경우다.

때로는 떠나보아야 원래 있던 곳을 잘 볼 수 있는 법. 손익분기점 80만에 한참 못 미치는 42만명이라는 극장 관객 동원에 그친 <티끌모아 로맨스>, “투자도 잘되고 캐스팅도 좋았던, 그렇게 나쁘지 않은 영화였기에” 독립영화로서는 파격적인 개봉관 숫자로 상업적인 승부수를 던졌다가 너무 빨리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사랑해! 진영아>는 그래서 씁쓸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독립영화를 하면서 사라지는 것에는 항상 익숙했지만 상업영화를 해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차라리 독립영화로서 긴 호흡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조금은 다른 영화들이 개봉 첫주 관객 동원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고 사라져야 하는 현실에서 ‘독립영화’가 더욱 소중한 이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디스토리는 한때 유일한 독립영화 배급사였다. 시네마 달, 인디플러그, 상상마당, CJ 무비꼴라쥬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이후 최초의 독립영화 배급사에 머물게 된 것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상황. ‘우리가 다 해야 하나’싶은 부담감에서 해방시켜준 ‘협력적 경쟁자들’이기 때문이다. 2, 3년 전에는 개봉시점 조율 등 단순한 정보 교류부터 정책에 대한 고민과 연대 등 생산적인 경쟁을 위해 국내 독립영화 배급사 네트워크를 시작할 정도로 넉넉했지만 그마저도 이젠 유명무실해진 상황. “대부분 회사들이 다 풍전등화 같아서. (한숨) 지난 정권부터 누적된 문제들이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이 쌓였다. 대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안정적인 운영이 힘들다.”

“20년은 가야지”

곽용수 대표는 그러나 ‘각박해진 시대,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독립영화가 더이상 관객의 눈을 끌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라는 섣부른 짐작을 평소 보기 드문 단호한 화법으로 부인한다. 그가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2011년. <혜화, 동>(인디스토리 배급), <무산일기>(영화사 진진 배급), <파수꾼>(필라멘트 픽쳐스 배급)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다양한 장르의 독립영화가 상반기에 연달아 개봉하며 관객동원은 물론 활발한 영화적 평가로 보답받았던 해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알 수 없는 것이 관객 마음.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나 <한공주> 이런 영화가 되는 걸 보면 되는 영화는 된다”는 것. 관객을 향한 손쉬운 원망을 대신하는 것은 내부적인 한계를 향한 차분한 반성이다. “10년 동안 독립영화 내부에서 가장 힘을 잃은 것은 이슈파이팅을 통해 동인을 부여했던 정책 단위인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제작, 극장, 배급 등 다양한 층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서도,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숫자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그러나 결국은 숫자로 대답해야 하는 배급자로서의 명찰이 너무 무거운 것일까. 이런 성마른 우려를 거두게 하는 것은, 긴 세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냐’는 자조적이고 절박한 질문을 오래 던지고 또 대답해왔던 내공이다. “버릇처럼 20년은 가야지, 라고 말하지만 회사가 오래됐다는 사실이 또다시 동인이 된다. 10주년 때는 영화제를 했는데 20주년 때는 또 뭘 새롭게 해볼까, 이런 고민이 중간에 있지 않다면 그저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 막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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