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어떻게 만들까’에서 ‘어떻게 보여줄까’로
2014-10-09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

“누가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선긋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우문에 대한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현답이다. 다양성, 저예산, 예술영화 등 여러 용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편의상 자의적으로 용어를 섞어 쓰는 사이 감내해야 하는 첫 번째 불편은 독립영화의 테두리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하도 여기저기 ‘독립’ 두 글자를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쓰다 보니 진짜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독제를 가보면 된다. 사실 영화제만큼 확실하고 선명한 노선을 드러내는 집단도 드물다. 한해의 경향부터 장기적인 방향까지 쌓여온 시간들이 기록으로 증명된다. 오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겹쳐만들어진 서독제는 그 단단한 결기로 뭉치고 연대하며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1월27일부터 12월5일까지 9일간 개최되는 제40회 서독제는 한국 독립영화의 한해 농사를 결산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특히 올해는 응모작만 1004편으로 역대 최대의 작품 수를 기록한 만큼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전 스탭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조영각 위원장은 문득 뒤돌아볼 때마다 새삼스럽지만 무게를 실감한다며 짐짓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서독제 일하고 있냐고 농을 던지시는 분들에게 ‘올해로 40회입니다’라고 답하면서 스스로도 놀란다.” 하지만 지금의 피로감은 세월의 무게보단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 봐야 할 것 같다. 40회라곤 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독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운영된 것은 조영각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은 2002년부터다. 지난 10년의 기틀을 다져온 만큼 앞으로의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진즉 도망가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웃음) 지금도 실무는 다른 분들이 더 많이 담당하고 있지만 문제가 터지면 책임지려고 버티고 있다.” 그의 버틴다는 말에서 영화제의 동력을 발견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를 전신으로 하는 서독제가 지금의 형태를 갖춘 건 2002년부터다.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취임한 첫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서울독립영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장편까지 받는 경쟁영화제로 전환한 것은 독립영화를 상시로 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복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끼리끼리 모여서 영화를 돌려보고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독립영화전용관 이야기라도 꺼내보려면 장편영화의 활성화가 절실했다.” 독립영화가 좀더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 조 위원장은 장편 경쟁체제를 도입해 그 명분을 다졌고 2007년 인디스페이스 개관이라는 열매를 거뒀다.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형태로 운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영관 지원제도에 비춰보면 안정적인 상영과 운영이 가능한 독립영화전용관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는 직접 운영 중인 인디스페이스와 위탁 운영과 프로그램을 맡은 인디플러그 두 곳을 관리 중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 아니라 2009년 인디스페이스가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뒤 2012년 민간자본으로 재개관하는 사이 벌어진 엇박자 행보 덕분에 확보한 자리라는 점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게 조 위원장의 입장이다. “처음 서독제가 CGV압구정에서 상영한다고 했을 때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비판할 건 비판하고 함께할 건 함께 가는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봤다.”

‘독립’이라는 두 글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영역을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은 서독제가 작품을 받아들이는 입장과 맥을 함께한다. “사실 요즘에는 필요에 따라 독립영화도 됐다가 불리하면 독립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영화도 많지 않나. 분명 상업영화 틀 안에서 제작되었는데 형편상 저예산으로 제작됐다고 독립영화에 할당된 지원을 일정 부분 가져간다든지 하는. 심정적으론 얄미울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마냥 부정하는 게 능사만도 아닌 것 같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인디 문화,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긴장할 건 긴장하는 게 맞다.” 다큐멘터리, 극, 애니, 실험 등 형식은 물론 장•단편의 상영시간, 제작 집단까지 구분 없이 폭넓게 받아들이고 최대한 넓게 관객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서독제의 방향타는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쟁영화제인 만큼 해마다 특정한 경향을 읽어낼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정 흐름을 주도하고자 의식적으로 선별하지는 않는 것이 유일한 원칙이라면 원칙이자 서독제의 오늘을 일궈낸 힘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있되 스스로 벽을 세우고 밀어내지는 않아야 한다. 내 밥그릇 챙기자고 서로를 공격하는 순간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다.” 대신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이뤄졌다. 가령 2012년 신설된 ‘새로운 선택’ 섹션처럼 “젊은 감독들의 에너지에 좀더 주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서독제가 할 몫”이다.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90년대는 사회운동과 개인적 문화활동에 대한 욕망이 긴장감 있게 공존하는 시기였다. 그 충돌 과정에서 생겨난 에너지가 영화운동이란 창구로 폭발한 측면이 있다.” 최근 독립영화들의 경향에 대해 묻자 대뜸 90년대 분위기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반면 최근 독립영화들을 두고 사회 고발과 비판의식이 옅어졌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면화된 소재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를 놓고 볼 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줄어든 건 아니라고 본다. 개인 체험에 기반을 둔 영화들의 편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의 지적처럼 이제는 영화를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다. 90년대부터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과 새롭게 카메라를 든 신인감독들이 어우러져 전 연령층의 감독들이 함께 출품하는 모습은 서독제의 흔한 풍경이다. “서독제에선 신인감독들이 종종 자기들을 가르친 선생님들과 함께 경쟁해야 한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제작 단위에서는 세월과 인력이 층층이 쌓여나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아쉬운 건 관객층이다. “매년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지만 그 층이 쌓이는 것 같진 않다. GV 때 단골 멘트 중 하나가 ‘독립영화를 처음 접해보지만 내년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와야겠다’는 거다. ‘영화는 좋은데 홍보가 안 돼 아쉽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저변의 확대야 당연하고 절실한 것이지만 서독제의 경우만 비춰봐도 제작보다는 배급과 상영에의 갈증이 더 커 보인다. 실제로 한해 제작되는 작품의 절반가량이 독립영화라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과 만남의 기회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이제는 과거처럼 삼삼오오 모여 특정 사람들끼리 보고 끝나는 것만으로는 해소가 될 수 없는 궤도에 올랐기에 배급과 상영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만큼 마케팅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다가온다. “모두가 100만이 넘는 흥행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지만 전국 20개가량 예술영화관에서 1만명 남짓의 관객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도 없다.” 독립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은 마땅히 계속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제는 독립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질문도 보태져야 할 때다. 늘 그랬듯 활로는 서로 모여 응원하고 함께 고민하는 축제의 장이기도 한 영화제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서독제의 지난 10년만큼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중요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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