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서거했을 때, 빈에서 거행된 장례식장에는 무려 2만명에 달하는 조문객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기록자는 3만명에 달했다고 쓰고 있다. 대서양 맞은편의 신생독립국에서도 조문단이 건너왔다. 당대 최고 음악가의 장례식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유럽 전역에 걸쳐 황실의 영향력을 드리우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가에 대한 외교적 예우의 측면도 있었다. 프란츠 스토버의 기록화를 보면, 1827년 3월29일 오후 4시경, 빈의 슈바르츠 슈파니어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 때 훔멜, 그릴파르처, 체르니, 슈베르트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만기를 들거나 운구를 하였고, 드넓은 광장을 수많은 조문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그때 관 속의 베토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당대 최고의 작곡가, 국민 작곡가, 원로 예술가, 사회 저명인사 등등의 말들이 지시하는 이미지들 그러니까 대가다운 풍모, 두루두루 존경받는 원숙한 명망가로 드러누워 있을까, 아니면 관 뚜껑을 발작적으로 두드리면서 원로, 대가, 저명인사 같은 말의 허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을까.
제 몸을 연소시켜버리는 불가해한 격렬함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물어보자. <오리엔탈리즘>으로 잘 알려진 학자이지만 그는 음악에 관하여 수많은 글을 썼고 음악과 다른 예술이 결합하고 서로 상처를 입히면서 탈출구를 찾아내는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하였으며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명민한 음악가들과 클래식을 둘러싼 20세기적 모험, 즉 ‘정치의 심미화 경향에 맞선 예술의 정치화’(발터 베냐민)의 수준 높은 가능성을 모색했던, 그러한 기획과 모색의 핵심적 행동과 증언이 응축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의 저자다. 만약 사이드라면 그날의 장례식에서 베토벤의 노쇠했으나 성난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말년의 양식’ (Late style) 혹은 ‘말년성’이란 개념은 원래 베토벤의 예술세계 특히 후기의 주요 작품을 해명하고 옹호한 아도르노에게 저작권이 있다. 어릴 때부터 최고 수준의 피아노 교습을 받았고 그래서 한때는 연주가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던 이 독일 교양시민 계층의 마지막 정신적 계승자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 그러니까 <피아노 소나타 32번>이나 후기 현악사중주들에 대하여 ‘말년성’이라는 상처 입은 광휘를 부여했다.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 등에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 그러니까 말년의 작품에 대해 최후의 한순간까지 세상의 모순과 자기 삶의 비타협적 절망을 끌어안고 희미하게 보이는 새로운 양식적 가능성의 빈틈을 향해 제 몸을 연소시켜버리는 불가해한 격렬함을 발견한다. 이를 발전시켜 사이드는 베토벤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의 후반기 삶과 예술을 복기하여 ‘말년의 양식’을 추출해낸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존경의 뜻으로 “아도르노는 시대와 어긋나려고, 니체적인 의미로 역행하려고 발버둥쳤던 말년성 그 자체”라고 쓴다.
가령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흔히 예술계의 원로들은 삶의 후반기에 이르러 사회 저명인사 노릇이나 하고 스승이니 대가니 하면서 조화, 소통, 해결 등의 근사한 말들을 한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모순이나 예술의 허위성 위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서 거들먹거리는 행동이다. 이는 거의 졸렬한 상태일 뿐이다. 다음으로 상상 가능한 풍경은 진실로 원로급 대가 혹은 대가급 원로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진정한 내적 통합의 작품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 진실한 풍경을 사이드는 호의적으로 기록한다. 그는 ‘공인된 경륜과 지혜’, ‘특별한 성숙’,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 풍경에 렘브란트, 마티스, 바흐, 바그너 등을 존엄하게 안치한다. 그러나 사이드는 세번째 풍경, 곧 ‘말년의 양식’을 옹호한다. 최후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자기 삶의 모순을 응시하고 타협할 수 없는 세상의 허위와 긴장하면서 인류가 한번도 겪지 못한 양식을 토해내면서 비통하면서도 장엄한 풍경이 그것이다.
이는 “예술적 말년성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는 풍경이며 “나이와 건강 악화로 무르익은 성숙함이 느껴지는 평온함에서 벗어”난 파국이며 헨리크 입센처럼 말년에 이를수록 “분노와 불안에 찬” 작품으로 “관객을 전례 없이 당혹스럽고 불안하게” 만드는,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이 곧 말년의 양식이다. 아도르노가 존엄하게 개념화했던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에 대하여 사이드는 “자신의 매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예술가가 기존의 사회질서와 교감하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모순적이고 소외된 관계를 새롭게 맺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 책에서 사이드가 베토벤 이상으로 옹호하는 예술가는 장 주네다. 사이드는 장 주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를 스케치하면서 그의 통역을 담당했던 젊은 작가 지망생의 세련되었지만 가벼운 태도에 대해 넌지시 비판하고 있는데, 그 통역자는 훗날 미국 대도시의 불안을 그리게 되는 폴 오스터다.
원로, 대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말들
어쨌든, (아도르노와)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 개념은, 지금 중요하다. 엊그제 세상에 나온 신진 예술가에서 원로니 대가니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덮어놓고 소통이니 화해니 서푼어치 공허한 말들을 남발하고 있는 바로 지금, 그 개념은 활어처럼 튀어오르면서 사방에 흔적과 상처를 남겨야 한다. 가령 사이드가 이 책에서 말하는 다음과 같은 충언은 등단하자마자 조로하는 우리 문화의 당황스러운 현상, 생물학적 나이만으로 대가를 자처하는 황당한 현상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생물학적 노년에 이른 진짜 예술가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오류 가능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말년의 양식을 추구하는데 이는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으레 수반되기 마련인 평온함이나 성숙함은 필요 없다는 듯이, 사랑스럽게 굴거나 환심을 사려는 생각은 없다는 듯이” 오히려 “관습적인 언어와 미적인 것을 훼손하고 그 한계를” 찢어버리고 미증유의 비타협적이며 불가해한 양식으로 망명을 떠나버린다.
뜻밖의 감동
<파우스트 박사> 토마스 만 지음 / 임홍배, 박병덕 옮김 / 민음사 펴냄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과 같은 맥락에서(연대기적으로는 아도르노의 영향 아래에서) 토마스만은, 베토벤의 후기 작품, 즉 <피아노 소나타 3 2번>을 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인상적인 도입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어떤 순간이, 한 극단적인 고비가 오자, 그 빈약한 모티브는 외롭고 쓸쓸히 아찔한 심연 저 위에서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경과는 창백한 숭고함을 자아내는 과정이었으며, 거기에 이어 곧바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위축된 근심스런 마음과 불안과 놀람이 뒤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날 때, 그리고 끝나가는 사이에, 원통함과 고집과 집착, 그리고 도도함 끝에 전혀 뜻밖의 감동적인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생겼다.”
이 한 대목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1년 이상은 꾸준히 참고 읽어야 할 소설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