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따뜻하구나, 다행이다
2014-10-1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내가 <유나의 거리>에 빠진 이유-소설가 황석영

“내가 뉴욕에서 망명할 때였지요. 그곳 청년연합에 나가서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들을 보는 게 하루 일과였어요.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서울의 달> <형> 등을 쌓아두고 다 같이 둘러앉아 오후 내내 봤어요. 소설이 아닌 드라마에서 그처럼 실감나고 생생한 리얼리티를 구현한다는 데 정말 놀랐습니다. 작가의 저력이랄까요. 그 뒤에 한국에 돌아와 일산에 정착했는데, 배우 문성근씨가 김운경 작가를 안다고 해서 같이 술 한잔하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어느덧 15년 정도 알게 됐나 봅니다. 그 양반 참 대단하다고 느낀 게 있어요. 어느 날 나보고 일산 재래시장에 가재요. 그래서 동행했더니 김운경 작가가 시장통에 퍼질러 앉아서 상인들과 같이 노는 게 아니에요. 장날 이틀 전인가 하루 전에 소 잡는 날이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가서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시장 정육점에 들어가 ‘저 부위 좀 떼주쇼’ 하는 겁니다. 생생한 다이얼로그를 수집하는 거예요. 그때 ‘아, 이 사람은 현장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구나’ 생각했지요.

사실 말입니다, 처음에는 <유나의 거리>를 보면서 좀 못마땅했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제 힘껏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 이런 범죄자들을 다루려 하나 싶었지요. 작가가 마음 놓고 더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런 설정이 되레 작가에게 핸디캡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나의 거리> 인물들을 보다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공명정대한 선량함을 가진 창만을 봐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유나도 당당해요. 비록 그늘은 있지만 자신과 같은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다세대주택의 주인 한만복도 처음에는 껄렁껄렁한데 볼수록 정이 가고요. 이것이야말로 선악의 이분법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참 세상이 어지럽지요. 나는 <유나의 거리>가 뻑적지근하고 놀라운 결말을 보여주기보다는 ‘따뜻하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열린 결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