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코믹한 연기도 진지하게, 슬픈 장면도 눈물 없이
2014-10-1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유나의 거리> 임태우 PD 인터뷰

-연출자로서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김운경 선생님이 캐릭터 구축의 달인이다. 내가 신경 쓴 건 오히려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대본에 ‘중정이 있는 연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인물들이 모여 살며 부대끼고 남의 인생에 끼어들고. 그러다 오해하고 또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는 게 아닐까. 마당의 위력이라 생각한다. 옥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다.

-소매치기 유나를 비롯해 전직 건달, 꽃뱀 등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김운경 선생님 댁에 가보면 <중국 거지의 문화사><도둑의 문화사> 같은 책이 엄청나게 많다. 연구를 많이 하시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나 냉대를 받던 인물이 과연 세상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라는 질문에서 유나 같은 인물을 만드신 것 같다. 유나는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인물의 반항이 체제 안에서 안온하게 자기 이익만 찾는 소시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유나를 알아갈수록 그녀의 분노와 설움이 자기 안에도 있다는 걸 발견할 거다. 당장 옆집에 <유나의 거리>의 인물들이 있다고 하면 다 싫어할 거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다가 이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은 착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와 가족의 이익 앞에서 이기적인 게 인간이니까. 그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유나의 거리>는 모든 인물들에게 드라마가 부여돼 있다.
=‘조연에게 드라마를 주면 안 된다’는 건 드라마계의 불문율 중 하나다. 그런데도 김운경 선생님은 주연 중심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해오셨다. 주인공 위주의 강력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극을 써내려가지 않는다. 선생님은 갈등이 생긴다 싶으면 얄미울 정도로 곧바로 풀어버리고 다음 상황으로 가신다. 그러다보니 연속극으로서의 힘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어떤 방식을 택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지 훤히 아는데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창의적인 고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진짜 캐릭터를 만들고, 인물들의 다양한 빈틈을 보여주고자 하신 거다.

-<유나의 거리>에는 극적인 상황 설정이나 직접적인 표현도 찾기 힘들다.
=‘어떤 게 좀더 리얼한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같이 울고 웃으며 감정을 소비하길 바란다. 그때 감정은 휘발성도 전염성도 강해진다. 특히 한국 드라마는 감정의 과잉이 심하다. 실생활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은데 극은 모두 다 극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우린 처음부터 TV연기의 전형에서 벗어나보자고 얘기했다. 연기자들에게도 감정을 설명하려들지 말고 눌러서 가자고 했고. 코믹한 연기도 진지하게 가고 슬픈 장면도 거의 울지 않는다. 클로즈업도 거의 없다. 투숏이나 바스트숏이 대부분이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거다. 그러면서 이야기와 연기는 리얼해지고 시청자는 거리를 두고 그 얘기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래서 극이 느슨하다고 느끼는 분도 계시지만 그건 유행과 다르게 가겠다며 도전한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유나의 거리>는 불한당 문학의 전통 위에 서 있다.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 착하게 살려는 게 아니라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자기 인생을 개척해보려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자기 안에 있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능력을 드러낸다. 인생은 우리에게 고통과 숙제를 안겨주지 않나. 착하게 산다는 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건, 모자란 개인들이 고통스러운 인생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의 하나인 것 같다. 그게 선함이 아니겠나. 타인에게 마음 쓰는 과정에서 인생을 감내할 힘이 생기는 거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페이소스가 우리 드라마의 주된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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