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와 로케이션, 상황을 발견해 롱테이크로 보존한다
2014-10-21
글 : 박소미 (영화평론가)
사진 : 정상봉 (BIFF데일리 사진팀)
부산에서 마스터클래스 가진 벨라 타르 감독

16살 때 처음 16mm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으며, 데뷔작 <패밀리 네스트> 발표 당시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그리고 34년이 흐른 지금 벨라 타르 감독은 완숙한 거장이다. 안타깝게도 감독으로서는 <토리노의 말> 이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영화 선생님으로서 그의 열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열혈 관객에게 자신의 창작의 비밀을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벨라 타르는 자신의 미학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원신 원숏 영화, 5분짜리 흑백 단편 <프롤로그>(2004)로 마스터클래스를 시작했다. 10월6일 부산 월석아트홀에서 진행되었으며 허문영 평론가가 함께했다.

허문영_예정에 없던 <프롤로그>라는 단편으로 강의를 시작하고자 한 이유는 뭔가.

벨라 타르_현실과 사람,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밝힌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영화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는데 초반부터 너무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로 선언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내게 일종의 성령과 같은 작품인 <프롤로그>를 함께 보고 싶었다.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나를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리액션인 셈이다. 내가 22살에 첫 장편영화 <패밀리 네스트>(1977)를 만들었을 때로 돌아가보자. 당시에는 유명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영화로 풀어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 거의 매일같이 극장에 갔지만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뿐이었다. 그래서 직접 16mm 카메라를 들고 비전문 배우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게 내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 뒤 34년 동안 내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현실과 세상이었다. 나에게 영화제작은 세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감독에게는 카메라를 잡는 순간 현실을 발견하고 이에 반응할 책임과 의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산층에 약간 못 미치는 계급 출신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고 돈이 넉넉하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지만 세상에 대해, 특히 빈민층에 관심이 많았다. 부르주아의 단순하고 고루한 삶보다는 빈민층의 삶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빈민층을 보고 추하고 냄새난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아름답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패셔너블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아니라 예술이다.

허문영_많은 비평가들이 벨라 타르의 영화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눈다. 9개의 장편 중 초기 3편을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로 분류하고, 후기 6편의 영화를 탐미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영화로 구분한다. 이런 구분법에 대해 스스로는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드는데 어떠한가.

벨라 타르_월요일에 잠이 든 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영화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다. 먼저 첫 번째 영화부터 시작해보자. <패밀리 네스트>는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려 했던 영화다. 첫 번째 영화를 끝낸 뒤에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워낙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럼 두 번째 영화는 서사적인 드라마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아웃사이더>(1981)다. 처음 두편의 영화는 비전문 배우와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정반대로 전문 배우와 작업하는 것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전문 배우를 데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텍스트 삼아 <맥베스>(1982)를 찍었다. <맥베스>를 끝낸 뒤 한동안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때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에 관한 영화 <가을>(1985)을 만들었다. <파멸>(1988)은 <가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내 영화들은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지 어느 날 갑자기 흐름이 뚝 하고 끊기는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허문영_벨라 타르의 영화에 대해 말할 때 롱테이크를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면 헝가리의 또 다른 감독 미클로시 얀초의 롱테이크와 당신의 그것은 다르다. 미클로시 얀초의 롱테이크가 관객의 눈에 쉽게 지각되는 롱테이크라면 당신의 롱테이크는, 롱테이크라는 형식을 인식하기도 전에 거의 정신을 잃고 완전히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신에게 롱테이크란 무엇인가.

벨라 타르_배우와 상황, 로케이션에 대한 언급 없이는 롱테이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먼저 배우와 상황에 대해서 말해보자. 감독이 배우와 작업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나리오에 따라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배우에게 지시하는 방법이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나의 작업 방식은 캐릭터와 유사한 배우를 찾는 것이다. 그런 배우를 찾으면 굳이 연기를 지시할 필요가 없다. 배우는 그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 된다. 그때 감독이 할 일은 배우가 원래 자신의 모습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평범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딱 하나이다. 또 하나는 로케이션.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시나리오를 정말 싫어한다. 진정한 영화는 로케이션에서 나온다. 로케이션도 일종의 주인공이다. <파멸>이나 <가을>에서처럼 주변 세계와 사물은 항상 우리의 인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 감독이 할 일은 로케이션 속에서 어떤 상황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난 로케이션 헌팅을 반드시 직접 한다. 물론 캐스팅도 전부 내가 한다. 상황과 배우, 로케이션이 결정되면 감독이 할 일의 반은 끝난 것이다. 남은 문제는 촬영이다. 촬영을 하는 방식에는 크게 숏테이크와 롱테이크가 있다. 배우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 뒤 롱테이크로 몰아가다보면 배우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다. 다른 감독들이 숏테이크로 편집을 하면서 시간을 무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나. 롱테이크로 촬영하면 공간과 시간을 모두 영화에 반영할 수 있다. 로케이션에서 상황을 발견한 뒤 제대로 된 배우를 앉혀 놓고 촬영을 하는 것, 이게 영화 연출의 전부다.

허문영_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롱테이크가 단순히 선택 가능한 미학적인 결정이 아니라 배우와 로케이션, 상황이 필연적으로 롱테이크를 요구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토리노의 말> 중 노인이 감자를 먹는 신이 있다. 그 롱테이크를 정말 좋아한다. 노인의 표정, 감자를 먹는 속도, 껍질을 벗기는 손길이 모두 어우러져 마치 한편의 완성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것을 연기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기적적인 연기다. 연기를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벨라 타르_실망스러운 답변일 것 같다. 배우에게 “식탁에 앉아서 감자를 드세요”라고만 말했다. 믿어달라. 그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배우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하라고 한다.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씀하신 장면에서 만약 내가 배우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연기해달라고 말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면 감자를 먹을 수도 없게 된다. “그냥 여기 있는 감자를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게 영화 연출의 전부다. 그 이상의 연출법은 모른다. 그래서 솔직히 연출가가 배우를 앉혀놓고 이 인물의 과거사는 무엇이고 어떤 트라우마가 있으며 성격은 어떤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관객_데뷔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고 했다. 34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세상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변했는지 말해달라.

벨라 타르_내가 만든 영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대로 드러내왔다. 모든 영화는 마치 발가벗겨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화를 만든 감독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감독이 물리적으로 영화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알아야만 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나도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세상을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뒤 주인공이 긍정적인 캐릭터인지 부정적인 캐릭터인지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진정한 영화는 그렇게 이분법으로 캐릭터를 나눌 수 없다. 멍청한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좀더 인내심을 갖고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변한 건 그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관객_부산영화제가 주최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교장이다.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벨라 타르_무언가를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내가 하려는 건 그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폰 하나만 있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대로 용감하게 행동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과 일할 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하인이 아니다, 당신은 기계의 일부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이 바로 규칙이다.”

관객_시나리오 없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하다.

벨라 타르_머릿속에 모두 다 들어 있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 대해 테이크마다 꿰뚫고 있어야 한다. <사탄탱고>는 7시간이 넘는 굉장히 긴 영화이지만 현장에서 언제나 지금 촬영하고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스탭에게 무엇을 지시해야 하고, 조명은 어떻게 세팅해야 하며, 배우의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등. 심플하지만 감독은 이런 것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관객_벨라 타르의 영화를 말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순 없다. 음악작업은 어떻게 하나.

벨라 타르_음악 역시 주인공이다. 하나의 등장인물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감독들은 영화를 완성한 뒤에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파트를 음악으로 채워넣는다. 나는 반대이다. 촬영 전에 선곡을 다 끝낸다. 배우 캐스팅을 끝낸 뒤 영화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음악 작곡가 미하이 비그와 나는 오랜 파트너다. 영화를 할 때 함께 작업할 사람을 찾는 게 아주 중요하다. 미하이 비그와 나는 음악과 관련 없는 이야기, 가령 소설이나 영화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 인생관이 비슷한 친구이다. 상대가 나를 느끼고, 내가 상대를 느끼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다.

관객_가장 무섭고 두려운 게 무엇인지.

벨라 타르_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원래는 무서움을 잘 타지 않는다. 나이가 들다보니 깊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정점에서 느끼는 아찔함, 비유하자면 가드레일도 없는 굉장히 높은 절벽에 섰을 때 그 깊이감이 나를 빨아들이는 느낌이 무섭다. 그외에는 없다.

관객_현대의 사람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벨라 타르_영화가 영향력을 갖는 건 좋은 것 같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감동을 받는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감동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다. 미디어를 정치적인 힘으로 여기는 것은 독이 될 수 있다. 예술의 힘은 달라야 한다.

허문영_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토리노의 말>을 만들고 나서 “나는 세상의 빛을 잃었다. 그래서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다”라고 얘기했는데, 이 말이 아직 유효한지.

벨라 타르_그렇다.

허문영_그렇다면 후배감독들에게 어떤 영화를 기대하는지.

벨라 타르_새로운 언어, 혁신적인 생각, 급진적인 사람을 보고 싶다. 어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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